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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인공지능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 정광필

등록 2016-03-22 18:46수정 2016-03-23 08:43

2045년 3월23일, 광필씨는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인 4시에 일어나 호출한 무인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그는 최신 장비를 마다하고 30년 전의 낚싯대로 월척을 잡기 위해 양수리로 향한다. 오전 10시, 물가에서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한다. 안건은 60~90살 장년들의 재교육을 위한 연수기획안 검토. 8개 나라의 전문가들이 1시간 회의 끝에 이분들의 왕성한 활동력을 토대로 자신의 사업을 구상하게 하고, 이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VR-2043’을 통해 전수하자고 합의한다. 딴짓을 하는 사이에 입질을 한 월척은 바늘털이를 하고 사라졌다. 몸보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을 주영씨가 떠올랐지만 내일은 저기압이 다가오니 다시 기회가 있겠지.

오후에는 중요한 토론과 투표가 있다. 2년째 격론이 벌어진 ‘강한 인공지능’의 허용 여부에 대해 각국의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이를 지켜본 세계시민들이 그에 대해 투표를 할 예정이다. 이번에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 등에 대비하기 위해 강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쿠글 등 글로벌기업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논박하는 게 중요하다. 귀갓길 무인자동차의 푹신한 소파에서 광필씨는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준비한 주영씨의 발표 자료를 꼼꼼히 읽으며 코멘트한다.

오후 5시, 70%의 반대표가 나왔다. 이로써 한동안은 잠잠해질 것 같다. 50대 중심의 마을 커뮤니티 멤버들이 환호를 하며 저녁에 잔치를 하잔다. 입체(3D) 프린터에서 찍어낸 고만고만한 메뉴에 지친 멤버들이 제각각 비장의 솜씨를 발휘한다. 식사 후 모두들 들뜬 분위기에서 광장으로 나선다. 그동안 갈고닦은 연주 실력을 발휘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축제판이 된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네트워크 멤버들도 자다 깨서 뒤늦게 축제를 벌인다.

꿈은 깨어나면 허망하지만 멋진 상상은 인간의 의지를 북돋운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3월은 온통 충격과 우려의 분위기다. 언론은 대체로 거대 자본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을 발달시켜 급기야 주인과 노예가 역전되는 상황을 걱정한다. 하지만 정부는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채 인공지능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뿐이다.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기본소득제를 주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향후 전개될 난국을 타개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 무력하게 지내다 보면 생계는 보장받지만 무엇을 할지 몰라 술과 도박에 찌든 보호구역의 인디언이 30년 후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멋진 상상이 필요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기술은 현 인류의 종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데,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정치인들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과거 아테네 시민들이 폴리스의 현안에 대해 오랜 시간 토의하고 결정했던 것처럼, 우리도 시민이자 인류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서 결정해야 한다. 발달된 정보통신(IT) 기술은 세계 모든 시민의 정치 참여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하다. 그동안 학교가 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일할 사람을 길러왔다면, 이제는 민주주의 훈련과 문·예·체 활동을 통해 시민의식을 갖추고, 놀 줄 아는 인간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 인공지능시대 진정한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인간과 인공지능은 각각 무엇을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광필씨의 어설픈 상상보다는 젊은이들의 발칙한 상상이 더 많은 이들의 상상과 실천을 자극하리라. 우선은 코앞에 닥친 총선부터.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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