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역사에는 비극적 서사가 서려 있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인 1937년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기계가 지능을 지녔는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그는 제2차 대전 때 독일군 암호 해독기를 만드는 공을 세웠음에도 동성애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당시 영국은 동성애자를 범죄시했고, 그에게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는 화학적 거세 처벌을 내렸다. 암호 해독권도 빼앗기고 소련 스파이로 의심받아 미국 입국도 거부당했다. 1954년 그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옆에는 청산가리가 든, 몇 입 깨문 사과가 있었다.(애플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로고를 이 일화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으나 애플 쪽은 체리로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해명했다.)
튜링 기계가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그가 자살한 뒤였다. 1956년 미국 뉴햄프셔 다트머스대에서 열린 학회에서 마빈 민스키 등이 처음 사용했다. 민스키는 뉴욕 브롱크스과학고 출신으로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그는 “인간의 지식을 기호화해 컴퓨터에 입력하면 사람과 똑같은 출력을 내줄 것”이라는 기호주의를 주창했다. 하지만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그와 고등학교 동기로 코넬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프랭크 로젠블랫은 “컴퓨터도 인간 뇌의 신경망처럼 학습시키면 근삿값을 출력할 수 있다”는 ‘퍼셉트론’을 제시했다. 이른바 연결주의다. 알파고는 이 계열이다. 민스키는 <퍼셉트론>이란 책을 써 로젠블랫의 이론이 허점투성이임을 지적했고, 로젠블랫 진영은 연구비가 끊기는 등 벼랑에 몰렸다. 어느 날 로젠블랫은 호수 위 보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코넬대는 사고사로 발표했지만, 자살이라는 주장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