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능력을 지켜본 한 선배의 소감. “알파고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된다면 한국 사회가 현재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 같아.” 인터넷을 살펴보니 이 의견에 공감하는 이들이 꽤 많다. ‘정치인이 알파고로 대체될 수 없는 게 제일 유감’ 같은 글들.
지난 일주일 인공지능에 대해 ‘딥러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저마다 복잡한 생각을 하며 세기의 대결을 지켜봤다. 생각하는 기계가 인간 바둑 최고수를 이긴 2016년 3월9일, 우리는 영화 속 얘기라고 여겼던 인공지능 시대가 훨씬 전에 와 있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고 막강한 기계 전사에 맞서 고독하게 분투하는 인간 이세돌 9단의 투혼에 많은 이들이 감정이입하며 인류의 미래를 고민했다.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지게 되고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은 아직은 한참 뒤 일이거나 쓸데없는 걱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인간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는 몇년 안에 알파고를 스마트폰에 장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과학원의 천윈지 교수 연구팀도 약 5년 안에 알파고급의 인공지능을 휴대전화에 장착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다. 5년쯤 뒤에는 휴대전화가 알파고급의 기능을 갖추게 된다니….
알파고가 대통령이 되는 날보다는 대통령이 알파고급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날이 훨씬 먼저 올 것 같아 우울해진다.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고 청와대가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지금, 국정원이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활용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권력자가 모든 시민을 감시하고, 사상과 감정까지 통제·조종하는 세상이 아닐까.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던 영역까지 전방위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퀴즈쇼에서 인간 최고수를 꺾었던 아이비엠의 인공지능 왓슨은 지난해 미국 암 전문병원에 암 진단 수련의로 투입됐다. 인공지능은 정교하게 진단하고 수술하는 의사, 실수 없이 수익률을 계산하는 투자분석가, ‘가장 효율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병사 등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도래할 것이다.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매력적으로 소통하는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에 깔리고, 인간이 인공지능과 연애하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이세돌-알파고 대국이 남긴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고유함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질문이다. 우리가 끔찍한 불평등과 감시사회를 막아낼 사회적 합의와 규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권력자들은 시민을 점점 더 교묘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고 기업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인간을 대량해고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익을 늘려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간이란 무엇일까? 사이버문화 전문가인 크리스 그레이는 <사이보그 시티즌>에서 인류가 이미 사이보그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물과 무생물이 결합된 자기조절 유기체’라는 사이보그의 정의에 따르면 인공장기나 보철물을 넣은 이들, 뇌 기능과 소통 능력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지하는 우리는 이미 일종의 사이보그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려 하기 전에, 인류는 페북·카톡에 의존해야만 소통하는 기계, 소비하는 기계 등으로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비싸고 성능 좋은 인공지능 칩을 장착한 인간이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는 암울한 미래는 막을 수 있을까.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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