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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맥주나 한잔 하십시다 / 정남구

등록 2016-03-15 20:48수정 2016-03-15 21:07

곡물과 물, 누룩만 있으면 술은 쉽게 만들 수 있다. 지난해부터 나도 집에서 맥주를 만든다. 다른 술은 즐기지 못하고 맥주는 유별나게 좋아하는데, 맛 좋은 맥주는 매우 비싸 직접 만들어 마시기로 했다. 맥즙을 우려내고 홉을 넣어 끓이느라 손이 좀 가기는 하지만, 소박한 장비만 갖추면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야말로 “물만 끓일 줄 알면 맥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딱 맞다.

‘흐르는 빵’ 맥주는 홉과 물, 맥아만으로 맥주를 만들게 한 맥주 순수령을 지켜온 독일의 술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산업화와 더불어 자본의 축적이 이뤄지던 18~19세기 독일 노동자들은 맥주보다는 화끈하게 빨리 취하는 화주(증류주)를 선호했다고 한다. 술은 급료의 일부였다. 야코프 블루메는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란 책에서 “술을 안겨주면 불평과 불만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머슴으로 만들기 쉬웠다”며, 고용주들이 치밀한 계산속으로 독주를 써먹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맥주가 노동자의 술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세상은 말짱한 정신과 근면성을 갖춘 남자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도 술에서 깨어났다. 때마침 퍼진 바이에른의 라거 맥주가 자의식과 자부심이 강한 산업 노동자들과 궁합이 잘 맞았다. 수많은 동호회가 만들어지고, ‘맥줏집 대담’이 사회문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취하지 않게 맥주를 즐겼다. 술집은 사회적 현안을 놓고 정치토론을 벌이는 자리로 탈바꿈했다. 이때 사람들은 맥주를 ‘사회민주주의의 주스’라 했다 한다.

나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대학 시절을 보냈다. 노동자들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박노해 시 ‘노동의 새벽’) 시대였다. 사람들이 독재정권의 행태에 분노하며 마시던 술도, 무력감에 마시는 술도 소주였다. 취하고 노래하는 동안 어려움을 잊고 견디게 해주던 이 술은 맥주보다 값이 아주 쌌다. 운동권 주도의 계몽의 시대에, 토론은 의식화의 수단을 넘어서기가 어려웠다.

일부 힘센 사람들은 폭탄주를 마셨다. 그것이 대중 속으로 퍼져간 것은 이른바 민주화 시대에 와서다. 이제는 절정을 지나 유행이 퇴색하고 있는 폭탄주는 어떤 의미일까? ‘병권’을 가진 사람에게 복종하고, 화끈하게 빨리 취해 반역 따위 생각은 깡그리 지워버리라는? 나는 폭탄주의 대중화가 정치는 나름의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경제민주화는 거꾸로 가던 시대의 인지 부조화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화의 전기가 되었던 6월항쟁이 일어난 지 내년이면 30년이다. 그런데 경제의 민주화는 갈수록 멀어지고, 권위주의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친 것일까? 일본 학자 요시다 도루의 글을 자꾸 곱씹어 본다. “정치란 자기 외의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이런 이들과 협력하거나 거래하거나, 이들에 반발하거나 이들을 강제하여, 공동체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끈질기게 실현하는 것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우리는 과연 지혜롭고 끈질기게 그래 왔는가? 작은 차이를 넘어, 다수가 공감하는 희망과 대안을 조직해 왔는가? 분노에 찬 저항을 조직하는 계몽의 시대엔 민주주의가 한판의 승부였을지 모르지만, 그런 시대는 오래전 끝났다. 토론하고, 차이를 드러내고, 그 위에서 협력을 조직해야 전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이 마시는 술의 알코올 농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알코올이 아니라, 공감이 고픈 것일 게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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