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대한 소수계층의 독점과 불균등한 배분을 정당화했던 가장 보편적인 잣대는 개개인이 지닌 능력의 차이였습니다. 한정된 자본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있어 우리는 능력의 상대적 고하를 기준으로 정하고 그것의 지배를 수용했습니다. 이는 자신보다 우월한 이가 더 많은 자본을 더욱 효율적으로 가져가는 데 이의하지 않겠다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암묵적 계약체결이었습니다.
능력은 노력이 시사하는 숭고한 가치들을 흡수하며 사회 전반에 종교에 가까운 의미로 승화됐습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노력의 고난을 거쳐 실현된 정당한 산물임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지불된 희생적 근로의 정통성을 사회 곳곳에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성공담을 새겨들으며 조금씩 자본에 대한 승자의 독점 구도를 불변의 진리로 추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전에 보지 못한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그와 같은 우리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바둑의 현존 최고수가 기계에게 패배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승패 여부를 넘어 인간이 평생 갈고닦던 능력과 그 기반을 지탱하던 노력의 가치붕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알파고의 바둑 실력에 필적하는, 아니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10여년이 너무 길다고 전문가들은 실토합니다. 우리는 특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요구되던 경이적 수준의 노력을 기계기술을 통해 고작 몇 번의 손가락질로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수의 미래학자들은 과학기술이 자본에 의해 잠식될 운명임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종전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적을 위해 훌륭한 스승을 섭외하고 좋은 학군으로 이사했다면, 이제는 문제풀이의 알고리즘이 내장된 생체결합형 칩을 경쟁적으로 구입해서 이식할 것임을 예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른 영역들도 크게 다를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바둑, 교육과 더불어 우리가 세계 제일로 인정받는 분야가 미용성형입니다. 기술의 진보는 성형이 머물러 있는 외과적 교정 수준을 유전자(DNA)를 조작하는 근원적 차원으로 발전시킬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미(美)의 자연적 생산과 성형의 인위적 작출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정교하고도 부작용이 적은 기술일수록 비싼 값에 매매될 것이고, 그 결과로 도출되는 엄청난 이익 역시 부유한 소수계층의 전유물이 될 것이 자명합니다. 자본에 포섭된 기술이 능력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토록 추앙받던 노력의 숭고함마저 적출할 때, 우리는 “우월한 이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체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이 기술을 매개로 노력과 능력을 넘어 그것이 어찌할 수 없었던 자연의 우위마저 손쉽게 사유하는 순간, 우리가 애초에 동의했던 계약 내용에 더 이상 추인할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세돌 9단이 초당 경우의 수 10만개를 계산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의 슈퍼컴퓨터와 맞서 싸우는 모습은 처절함을 넘어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기계가 아닌 인간이었다면, 한 분야의 천재가 평생 기울여야 가능했던 위대한 노력의 성과물이 돈으로 압도되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도 그 싸움의 당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과 사상을 지배하는 사회경제체계의 대변혁이 논의돼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벌써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던 반상 위에 펼쳐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우람 미국 변호사
정우람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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