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 대 유승민 / 박찬수

등록 2016-03-10 20:53수정 2016-03-10 21:08

지난해 9월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만두와 옛날 꽈배기를 사 먹었다. 발에 꼭 맞는 구두 한 켤레도 샀다. “예뻐요?” “예뻐요!” 대통령이 묻자 시민·상인들이 합창하듯 화답했다. 대구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건 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정치 입문을 처음 알린 게 1997년 12월 대구 동성로 지원유세였다. 18년 만에 대중 앞에 선 박근혜를 보려고 1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대통령 후보(이회창) 유세에도 청중이 1만명을 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뒤 박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마다 대구를 찾았다.

서문시장 방문은 그런 연장선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대통령의 주변에 지역 국회의원은 없었다. 일부러 대구 국회의원들은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자기 뜻을 거스른 유승민 의원과 다른 현역 의원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음을 대구시민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어제 박 대통령은 다시 대구를 찾았다. 반나절 동안 대구 곳곳을 훑고 다녔다. 말은 안 했지만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달라. 나를 배신한 유승민 의원을 여러분이 심판해달라.’ 대구는 또다시 그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이번엔 확실하지 않다. 박근혜만큼이나 대구는 유승민을 아낀다.

유승민 의원은 티케이(TK·대구경북) 주류고 이 지역의 가장 유력한 차세대 정치인이다. 아무리 여왕의 권력이 세도 ‘지는 해’일 뿐이다. 유망한 젊은 기사를 민심이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칼에 유승민의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질 않는다. 공천관리위원장인 이한구도 그렇고, 청와대 정무수석인 현기환도 그렇고, 대통령 최측근 의원이라는 최경환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8년 4월 ‘공천 학살’의 칼을 휘둘렀던 친이계 핵심 이방호 사무총장의 정치적 말로가 어땠는지 새누리당 인사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유승민 하나 살려둔다고 당이 결딴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경선을 붙여서 이기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유승민을 쳐내면 수도권 여론이 안 좋아질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친박 인사들조차 주저주저한다.

하지만 대통령 뜻은 확고하다. ‘배신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박 대통령은 유승민 의원을 도저히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역 의원 컷오프(경선 배제)와 당내 경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이 대구를, 그것도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동구를 굳이 방문한 건 매우 상징적이다. ‘대구 민심은 내가 책임질 테니 너희는 유승민을 내치라’는 섬뜩한 메시지를 새누리당에 전하고 있다.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유승민 의원 못지않게 긴장하는 이들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들이다.

유승민을 아예 컷오프 시킨다면 그 정치적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게 분명하다. 당장 유 의원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 지금 여론조사 수치론 무소속으로 나와도 당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수도권에선 역풍이 불 것이다. 야당 분열로 수도권 열세를 뒤집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는데,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에, ‘배신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자기 원칙이 톱니바퀴처럼 견고하게 맞물려 있는 탓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지난해 7월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 유승민 의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이번 싸움은 왕정 대 공화정의 싸움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왕정의 승리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