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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2010년과 2016년 / 박병수

등록 2016-02-28 18:33수정 2016-02-28 23:50

기습적인 4차 북핵실험에서 촉발된 한반도 위기가 미국과 중국의 극적인 의견접근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6년 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떠올랐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하고,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은 전혀 다른 사건인데도 겹쳐 보였으니 엉뚱하달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두 사건의 전개 구도는 꽤 닮았다. 두 번 다 한껏 고조된 남북 긴장이 미-중 갈등으로 확대되더니 결국 미-중 담판으로 변곡점을 맞았다. 2010년에는 정상들이 나섰다. 이듬해인 2011년 1월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 비핵화, 6자회담 이행 등에 합의했다. 이번에는 외교 책임자들이 나섰다.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을 찾아 존 케리 국무장관과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의 막힌 고리를 풀며 제재 이후 대화국면 모색의 운을 떼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 문제가 끼어들어 갈등의 촉매제 구실을 한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10년엔 미국 핵추진 항모가 문제였다. 미국은 대북 무력시위를 위해 항공모함을 서해에서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에 파견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놓고 미-중이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남북 사이에도 닮은꼴이 있다. 이번에 개성공단 중단이 있다면, 당시엔 남북교류·협력을 중단시킨 5·24 조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사건에서 확인된 ‘불행한’ 현실은 한반도의 지정학이다. 미·중 두 강대국 세력의 교차점인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아지면 미·중의 개입 가능성이 커진다. 미·중이 나서면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방관자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에도 미·중이 저희들끼리 한반도 문제를 요리하는 것을 먼발치로 지켜보다, 며칠 뒤 미국과 중국 쪽 인사가 차례로 와서 설명하는 것을 받아적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북한과 평화협정 관련 비공개 접촉도 했다. 정부는 뒤늦게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비핵화 우선”만 되뇌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미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중 외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뒤로 제쳐지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미국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신세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은 2010년 천안함·연평도의 위기와 갈등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불씨가 됐다. 7월과 10월 뉴욕과 제네바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두 차례 열렸다. 그러나 당시 북-미 회담은 불행히도 그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으로 더는 성과를 못 내고 끝났다.

이번에도 미-중 간 23일 외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유엔 대북제재 이후 대화국면 모색이 거론되는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북한은 2012년 4월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고,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정책을 채택했다. 분명한 핵보유 의사다. 오바마 행정부도 임기 말이어서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박병수 선임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이럴 때 우리가 뭔가 역할을 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허황한 북한붕괴론 주문만 외는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을까. 설령 의지가 있더라도 우리 몫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2011년 7월 북-미 고위급접촉 직전 남북 6자 수석대표 회동이 한 차례 있었다. 그러나 북·미의 남한 소외감 달래기용 배려, 모양 갖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 해 전 5·24 조치로 대북 지렛대를 잃은 남한에 무슨 역할이 남아 있었겠는가. 이번엔 개성공단마저 닫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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