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제목에는 수많은 은유가 담긴다. 케이블 음악방송 엠넷(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도 그렇다. ‘101’을 ‘일공일’이나 ‘백일’로 읽었다면 ‘H.O.T’를 ‘에이치.오.티’가 아닌 ‘핫’으로 읽는 것과 같다. 제작사 쪽이 의도한 것은 영어 발음 ‘원오원’이다. ‘원오원’은 영미권에서 대학 강의 기초과목을 뜻한다. <프로듀스 101>은 ‘제작개론’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프로듀스 101>에서는 소속사가 다른 101명의 소녀 연습생들이 유닛 걸그룹에 뽑히기 위해 경쟁한다. 100% 투표 방식이기 때문에 가창력이나 춤 실력보다는 팬들의 호감도에 달렸다. 2001년 방송됐던 <목표달성 토요일>(문화방송)의 한 꼭지인 ‘악동클럽’이 <슈퍼스타케이(K)>(엠넷), <위대한 탄생>(문화방송), <케이팝스타>(에스비에스)를 거쳐 <프로듀스 101>까지 진화한 모양새다.
제목에 ‘개론’이 들어갔으니 에이(A)부터 에프(F)까지 학점을 매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도 공개된다. 하위권에 대한 배려는 없다. 걸그룹 트와이스를 탄생시킨 <식스틴>(엠넷)에서 메이저, 마이너로 구분됐던 연습생들은 <프로듀스 101>에 와서 개별 학점, 등수까지 매겨지는 처지가 됐다. 국민투표라고는 하지만 카메라에 많이 노출된, 그리고 우호적으로 편집된 연습생이 투표받기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공정을 가장하지만 애초부터 공정은 없었다.
언어유희의 시각에서 보면 ‘101’은 일견 ‘lol’(엘오엘)과 닮았다. ‘lol’(laugh out loud)은 영미권 메신저, 트위터 등에서 사용되는 웃음을 표현하는 속어로 한국으로 치면 ‘ㅋㅋㅋ’쯤 된다. 꿈은 상품화됐고 서열화까지 됐다. 마치 잔인하고 혹독한 장난 같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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