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언어의 구토 / 서해성

등록 2016-02-12 19:09

대중은 지금 구토중이다. 구토 내용물은 엔포세대, 흙수저, 조물주 위에 건물주, 헬조선 따위 희망 없는 사회가 생성시켜내는 토사물들이다. 대중 스스로가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이 자조적 풍자언어가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 상시 출몰하고 있다. 이걸 다중지성이라고 하는 게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거룩한 두께로 군림해온 언어로는 현 상황을 적절히 압축, 비유, 설명할 길이 없어서 새말이 무시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언어의 구토다.

연애·결혼·출산 포기라는 3포는 벌써 고사성어가 되었고, 일자리와 내집 마련 포기로 5포, 인간관계와 희망 포기로 7포, 건강과 외모관리 포기로 9포를 거쳐 다포시대는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광범한 알바인턴 시대에 어린이 장래희망이 정규직인 사회에서 지상에 방 한 칸 얻기가 까마득해 마침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강림한 지경이다. 삼정의 문란이 울고 갈 법하다. 흙수저라는 말이 널리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 가을이다. 이 언어들의 전반적인 기조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모멸적이다.

구체제 복귀 초기만 해도 다중 풍자는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광우병 사태가 터졌을 때 중간고사를 앞둔 중학생들이 뱉어낸 언어는 되물릴 수 없는 폭소와 근육이 내장되어 있었다. 쥐박이 너나 먹어. 이는 불특정 다수 대중이 권력을 향해 퍼부은 풍자의 정점을 찍고 있다. 욕설을 일러 지배자를 해체해서 끌어내리는 대중투쟁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언설과도 부합한다고 해야겠다. 적어도 모종의 낙관적 정서가 관철되어야 욕설과 풍자는 유쾌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근래 풍자언어의 가장 뚜렷한 특성은 자기 저주다. 비판과 분노, 체념과 비하, 좌절과 포기, 절망과 낙담, 실패가 노골적으로 언어의 표면을 타고 흐르다 심층으로 자맥질을 감행하는가 하면 문득 기도를 타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 끈적한 소화액의 이름은 비관이다. 취업 불가, 방값 불가, 신분상승 불가 등 불가 따위의 외연을 선거부정, 세월호, 메르스, 국정 교과서, 노동법, 개성공단 폐쇄 등이 둘러싸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느린 쿠데타에 대한 야당 등 대응권력의 무능과 무기력은 대중을 자조와 저주로 기울게 하는 촉매제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망조 든 한국 사회를 이들 언어가 통렬하게 강타해가고 있는 참이다.

오늘날 풍자언어는 통신 형태의 은어성 신조어를 넘어 다중 공감을 전제로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유통 공간은 인터넷이다. 언어 생산 중심이 청년세대라는 점은 미래에 암전을 드리우고 있는 징후임에는 분명하다. 이들 언어는 정치와 자본 권력에 반감을 품은 폭로와 공격은 있되 정의의 중심에 서 있기도 버거워 비극적이게도 좌절의 궤도에서 원심력을 얻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고통을 철저히 개별화해서 자기를 살해하는 양태인 것처럼 장기 불황과 장기 좌절을 자기 학대로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연대와 기대가 꺾인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기 공격적 성향이다.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구토는 거꾸로 행하는 배설이다. 헬조선 사전을 편찬해도 좋을 만큼 숱한 말들이 이 순간에도 출생하고 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구토 언어는 대중 신음이다. 구토 이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여기가 언어의 종착지다. 이제 본격 등장할 것은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해체행동으로서 언어투쟁이다.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란 없다. 말이 천하를 구하리라. 저항언어가 아름다운 것은 그 말의 문학적 수사나 심도보다 그 언설 구조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혹시 아직 눈물과 욕설이 부족한가. 그렇다면 더 구토하라.

서해성 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1.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대선 앞 ‘우클릭’ 이재명의 실용주의가 놓친 것 [아침햇발] 2.

대선 앞 ‘우클릭’ 이재명의 실용주의가 놓친 것 [아침햇발]

[사설] ‘내란 음모론’ 힘 싣는 국힘, 그러면 계엄이 없던 일 되나 3.

[사설] ‘내란 음모론’ 힘 싣는 국힘, 그러면 계엄이 없던 일 되나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4.

[사설] 자신 위해 싸우라는 윤석열의 ‘옥중 정치’, 불복 선동하는 것인가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벌열’ [.txt] 5.

내란을 내란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벌열’ [.txt]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