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에는 강자에게 보내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상대가 아무리 약자라고 해도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마구 몰아붙이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거기엔 분명히 ‘승자의 저주’가 작용하고 있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노태우 정권이 탈냉전의 흐름을 잘 포착해 실시한 북방정책이 너무 성공을 거둔 나머지 북한은 깊은 좌절감과 고립감에 빠지게 되었다. 남한은 이제까지 적성국이었던 옛 소련 및 중국과 수교를 이뤘지만, 북한은 끝내 남한의 친구인 미국·일본과 손잡는 데 실패했다. 북방정책의 목표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완벽한 성취였다.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미·일·중·러 4자의 남북한 교차승인 실패로 생존 위협에 몰린 북한이 이때부터 핵 개발 카드로 반격전에 나섰다. 마치 70년대 말, 지미 카터 미국 정권이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자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핵 개발로 맞선 것과 비슷한 대응이다. 연초 4차 핵실험에 이은 2월 중 장거리 로켓 발사 예고까지 2006년부터 대략 3년 단위로 되풀이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시 도발의 뿌리는, 따지고 보면 ‘북방정책의 과도한 성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북핵 위기를 다룰 때 그때그때의 상황만 보고 대응해서는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배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은 안보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아무리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을러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갈 것이다. 그렇다고 도발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다.
따라서 북핵 해법도 장기·단기 차원의 동시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의 안보 위기를 해소해 주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장기적인 노력을 요하는 한방적인 접근이라면,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도발에 응급대처하는 것은 양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두 가지 접근 모두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매번 오진 속에서 오답만을 내놓는 실패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먼저,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가 취하고 있는 단기적 대책은 무질서의 극치이다. 목표와 수단이 따로 놀고, 수단들 사이에 선후나 경중이 없다. 사격에 비유하면 정조준이 아니라 난사에 가깝다. 4차 핵실험에 대한 가장 시급한 정책 목표가 ‘더욱 강화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라고 하면서도 대통령부터 이런 목표를 해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북핵 실험 이후 박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내놓은 대응책은 크게 ‘북한을 뺀 5자회담 추진’, ‘사드 배치 적극 검토’, ‘대북 심리전 차원의 확성기 방송 재개’의 세 가지다. 하지만 이들 모두 안보리 결의 강화와는 역방향의 행동이다. 가장 먼저 내놓은 확성기 방송 재개에 우방국인 영국 외무장관이 즉각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 뼈아프다. 더 치명적인 것은 나머지 두 방안이다. 제재 강화의 핵심국인 중국을 끌어들이기는커녕 멀리 내쫓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중국은 5자회담에는 외교부 대변인이 즉각 거부 의사를 나타내고, 사드 배치 검토에는 관영언론을 내세워 ‘대가를 각오하라’고 반발했다. 덩달아 러시아도 중국 편에 서고 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자해적 조처다.
장기 대책은 아예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통일이 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란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이지 정책이 아니다. ‘코리아 포뮬러’나 ‘탐색적 대화’도 결과적으로 말의 성찬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북핵 문제는 그 뿌리가 깊은 만큼 단숨에 해결하기 어렵다. 큰 그림을 그린 뒤 장기와 단기, 한방과 양방을 결합한 끈질긴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오진에 오답의 헛발질만 해온 외교·안보 진용의 개편이 시급하다. 4차 핵실험 이후 대응이 그들의 무능함·저능함을 죄다 보여주지 않는가.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ohtak@hani.co.kr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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