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머리지는 본디 부둣가 하역 현장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이다. 멀리서 물건을 싣고 온 화물선에서 화주(또는 대행업체)들이 약정 기간 안에 물건을 육지로 내리지 않으면 화물선의 발이 묶이기 마련이다. 이처럼 초과 정박 기간에 대해 화주들이 물어야 하는 일종의 과태료를 디머리지라 부른다. 불필요한 초과 정박에 대해 수수료를 물림으로써 화물선의 회전율을 높이도록 유도하자는 게 제도의 취지다.
디머리지의 원리는 화폐 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1936년 캐나다 앨버타 주 정부는 주민들에게 ‘번영증명서’라는 이름이 붙은 증표를 나눠주는 독특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 증표를 내고 물건을 살 수도 있을뿐더러 2년 뒤엔 공식 화폐인 1캐나다달러로 교환해준다는 약속을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따랐다.
증표를 손에 쥔 사람은 일주일마다 1센트짜리 스탬프를 사서 증표 뒤에 붙여둬야 한다는 것. 주민들은 일주일마다 1센트를 주고 스탬프를 사는 수고를 하느냐, 아니면 곧장 물건 사는 데 써버리느냐의 선택 앞에 놓였다. 스탬프를 사는 데 쓰이는 1센트는 결국 증표의 회전율을 높이려는 디머리지였던 셈이다.
최근 일본 중앙은행이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민간은행이 돈을 맡기는데 이자를 주기는커녕 외려 수수료를 물도록 한 것이다. 경기를 띄우려는 의도이겠으나, 그 밑바탕엔 돈의 회전율을 높여보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쉴 새 없이 실물영역을 돌아다니며 교환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할 화폐가 금고 속이나 은행계좌로 퇴장해버리면 오로지 소수의 부를 늘리는 가치축적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지대추구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다양한 형태의 디머리지 역시 등장하기 마련이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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