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며칠 전 한 소셜코머스 사이트 상품 판매 게시판엔 적립금을 받지 않겠다는 고객들의 선언이 줄을 이었다. 이 소셜코머스 사이트는 결제한 날로부터 4일 안에 상품을 받지 못하면 하루가 늦어질 때마다 적립금 1천원을 지급한다는 ‘배송 지연 보상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고객들이 보상금을 사양하게 된 것은 이 사이트에서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한 업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업체는 며칠 전 자신들이 가진 물건 재고를 훨씬 넘는 주문이 밀려들자 뒤늦게 품절이라는 것을 알렸지만 이미 상당수가 결제를 마친 다음이었다. 제품을 판매한 소셜코머스 사이트는 이미 주문한 사람들에게 “사과의 의미로 전액 환불과 함께 배송 지연 보상금 3일치에 해당하는 3천원을 적립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안내했다. 인터넷에서 ‘적립금 받지 않기 운동’이 시작된 것은 보상금 내는 쪽이 소셜코머스 사이트가 아니라 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적어도 1만명이 넘는 고객들에게 적립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한 영세 업체가 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한 누리꾼의 글이 퍼져나가면서 자진해서 주문을 취소하고 적립금을 받지 않겠다는 구매자들의 글이 1천건을 넘어섰다.
온라인 쇼핑에서 가장 큰 미덕은 ‘빠른 배송’이다. 후발 주자인 소셜코머스들은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앞다퉈 ‘번개배송’을 내세웠다. 당일 배송 경쟁으로 시작해 요즘은 3시간 배송 경쟁까지 하며 초다툼이다. 온라인 서적 판매 업체들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지 오래다. 온라인 서점에 책을 주문하면 자정 직전 배달원이 책 한 권을 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풍경은 흔해졌다. 배달원들을 12시에 쫓기는 신데랄라로 만든 이 배송 지연 보상금이라는 것도 온라인 서점이 당일 배송을 약속했지만 그날 받지 못한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시작된 제도가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이다.
빠른 배송은 여러 해 전 불붙었던 피자 배달 속도 경쟁과 구조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피자회사들은 30분 배달을 약속하고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땐 피자가게가 벌금을 내며, 가장 압박을 받는 사람은 배달원이기 때문에 피자 배달원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질주를 했다. 이번에 소셜코머스 사이트를 대신해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 회사는 “모든 것은 우리 회사의 잘못이며, 보상금 지급도 계약에 따른 것이므로 고객들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공고문을 다시 걸었지만 이미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온라인 판매사들이 납품업체들에 보상금뿐만 아니라 사이트들이 발급하는 할인 쿠폰이나 마케팅 비용까지 내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등이 알려졌다. 다른 유통질서에서 그렇듯 작은 업체가, 가장 적은 이득을 보는 배달원 등이 좀 더 많은 책임을 진다. 30분 안에 따뜻한 피자를 받아든 고객들이 어떻게 이토록 빨리 이 피자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면 빠른 배송의 갑을관계는 묻히기 쉽다.
속도를 앞세우다 보면 윤리나 환경 같은 다른 책임이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얼마 전 한 소셜코머스 사이트에 양초 6개를 시켰더니 축구공도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상자 6개가 번개처럼 배달됐다. 한 상자에 여러 물건을 차곡차곡 넣는 것보단 상자 1개에 물건 1개씩 넣고 보내는 것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적정 이윤을 가질 권리, 배달원이 정시 근무를 할 권리, 쓰레기를 최소화할 의무 등이 번개처럼 잊히고 있다.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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