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 디지털이요?”
지난해 10월, 편집국장이 정치부장인 나를 부르더니 ‘디지털 에디터’를 맡으라 했다. 그때까지 신문에만 코 박고 살아 <인터넷한겨레>도 잘 안 들여다보던 사람이었다. 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은 3G였고, 전화기로만 사용했다. 새 보직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잠시 멍했다. 나는 ‘황당’했는데, 아마 국장은 ‘당황’으로 읽었으리라.
그렇게 시작했다. 아침 편집회의 때마다 전날 페이지뷰(피브이·PV) 상황을 보고하고, 주간 단위로 많이 본 기사에 상도 준다. 피브이가 오른다고 당장 회사 수익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도 않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잘 않던 개인 페이스북에도 매일 기사 한 건씩 올려본다. 조금 지나니, 어떤 기사를 많이 보는지 예지력(?)이 생겨났다. 갈등의 시작이다. 위안부 문제나 박근혜 정부 비판은 언론, 그리고 <한겨레>가 이 사회에 기여해야 하는 기능과 피브이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 그러나 북핵, 거시경제, 학술 기사는 중요하지만 보는 이가 많지 않다. 반대로 엽기적 사건이나 연예인 관련 기사는 일회성 오락거리 요소가 강하지만 의외로 한겨레 독자들도 많이 본다.
지난 26일 ‘도도맘’이 40대 남성을 폭행과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기사가 떴다. 한겨레 독자가 몰라도 될 내용이었다. 무시했다. 그런데 유혹이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 ‘사이트 아래에 걸어만 놓아도 상당한 피브이를 올리겠지?’ 며칠간 피브이가 계속 떨어져 기운 잃은 황소에게 세발낙지 한 마리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로 앞 뉴스팀장에게 “도도맘 어떻게 하지?”라 했다. “많이 보겠지만, 너무 경미해서…”, “그렇지? 그냥 둡시다.”(‘도도맘’ 기사를 게재한 각 언론사의 개별적 판단을 존중한다.) 그 ‘도도맘’ 기사(연합뉴스)는 그날 나온 국내 언론사 모든 기사를 통틀어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 4위였다.
“제목이 너무 센데, 누그러뜨리자”, “최근 박 대통령 비판 기사를 많이 썼으니, 조금 뒤로 두자”, “개별 정치평론가 워딩으로 톱을 쓰진 말자” , “편집국이 오래 준비한 기사니, 많이 안 보더라도 톱을 유지하자”, “이건 쓰지 맙시다” 등등 겉으론 피브이를 말하면서도 결과적으론 오히려 올라가는 피브이를 잡아당기는 일을 더 많이 하는 듯하다. 피브이 ‘단물 빨아먹기’가 한겨레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종종 ‘80년대 영화배우들, 지금 모습은?’(■ 80~90년대 여배우들의 과거와 현재) 등과 같은 해외토픽성 화보 작성을 맡기는 등 ’한겨레’가 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맨 마지막까지 발을 들이밀곤 한다.
피브이와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 앞에 ‘두 마리 토끼’ 운운하는 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과 똑같다. 저자, 작가적 속성이 강했던 기자들은 점점 잘하지도 못하는 피디, 큐레이터처럼 되기를 요구받는다. 인터넷한겨레는 절대적 기사 건수도, 쉽게 읽힐 기사도 적고, 속보는 상대적으로 늦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 있는 비결은 한겨레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적 기사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찾고, 읽고, 공감해주기 때문이다. 고맙다. 하지만 때론 그 차별성이 ‘시각’의 차별에 의한 것임에도 ‘질적’ 차별이라는 나르시시즘적 착시효과를 갖기도 한다. 한겨레가 잘해서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사회와 언론환경이 오히려 한겨레의 필요이유이자 생존환경일 수도 있다. 한겨레는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 언론환경을 발판으로 삼을 것인가? 결국 언론은 네이버와 페이스북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인가? 날은 저무는데, 숙제는 점점 쌓인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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