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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노 생큐! / 고영직

등록 2016-01-29 18:41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문화적 동면기인 1월 막바지를 보내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칼럼집 <발언>과 함께,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쓴 <전문가들의 사회>를 열독했다. 두 권으로 묶인 김종철의 <발언>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진보적 언론매체에 쓴 글들을 모은 칼럼집이고, 이반 일리치의 책은 전집 기획으로 출간된 책이다. 두 사람의 책은 출간되는 족족 읽어온 터라 이번에도 ‘지적 거인’들의 사유와 성찰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마치 물 머금은 습자지처럼 책을 읽었다고 하면, ‘까칠한’ 두 저자에 대한 결례가 아닐지 모르겠다.

외람된 비유일 수 있겠으나, 김종철과 이반 일리치 두 사람은 ‘샴쌍둥이’ 유전자(DNA)를 지닌 것 같다. 근대 소비사회 시스템에 대해 작별을 고하고, 공생의 정치를 바탕으로 한 깊은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구현을 통해 탈성장사회로의 전환을 누구보다 열렬히 희망하고 사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사람이 가진 유일무이한 수단은 말과 글을 통한 ‘발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발언은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주 구사하는 거짓 언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김종철의 <발언>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 교과서이고,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격문(檄文)이라 할 수 있고, 이반 일리치의 책은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의 제국’에서 벗어나 시민 주도의 급진기술을 통해 온전한 삶의 회복을 촉구하는 탈근대사회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김종철은 “지식인에게 있어서 ‘발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혼 없는 기술관료들이 구사하는 거짓 언어들에 신물이 난 이 시대에, ‘사이다’ 같은 물음을 던지고 사람 사는 사회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철저한 민주주의자로서의 고투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1960~1980년대 군사정부 치하의 일화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 어느 도서관 사서가 보여준 ‘자기 재량’의 소신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문제란 자기 재량권이 없는 상황에서 비롯한다는 언급은 탁견이다. 자기 재량권 없는 삶이란 자유인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반 일리치가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탄핵해 마지않는 ‘전문가 전체주의’라는 문제의식과도 통한다. 그는 현대의 과두제란 끝없이 ‘필요’를 설계하는 의사, 교육자, 사회사업가, 과학자 등의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전체주의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누구나 전문가들이 고안한 필요를 자기 것인 양 착각하며 ‘남들처럼’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전문가의 시대가 정치 소멸의 시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자신의 운명을 전문가들 손에 맡긴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자율은 무너지고, 기쁨은 사그라지고, 경험은 같아지고, 욕구는 좌절되는 과정에 있다.”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에 대해 ‘존경’이 아니라 ‘의심’을 하자고 역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김종철과 이반 일리치 책을 읽으시라. 그러면 지금보다 ‘조금 더’ 담대해지고 ‘조금 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해 자유인으로서의 탄성을 토하게 될 것이다. 노 생큐라고! 저성과자 해고를 포함한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를 양산하려는 나쁜 법에 불과하다. 인간의 법, 인간의 말이 절실히 필요하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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