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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한류의 중국화, 쯔위의 경고 / 박민희

등록 2016-01-20 18:34수정 2016-01-20 20:46

제이와이피(JYP)의 박진영 대표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쯔위 사태’를 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까?

지난 8일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가수 황안이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를 ‘대만독립분자’로 몰아 비난하고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파문이 확산된 뒤, 제이와이피가 쯔위의 사과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15일 밤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16살 소녀 쯔위는 허리까지 굽혀가며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일찍 나와 사과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제서야 나왔습니다. 중국은 하나뿐이고, 양안(중국과 대만)은 일체이며, 나는 중국인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종이에 쓰인 글을 읽어가는 목소리는 떨렸다.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15일 대만인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대만 양안정책협회의 조사 결과 쯔위 동영상을 본 뒤 134만명의 젊은 유권자가 애초 의사를 바꿔 중국에 비판적인 차이잉원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선자 차이 후보가 얻은 689만표의 거의 20%다.

중국인들은 이 사과 동영상을 어떻게 봤을까? 몇몇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강요당하거나 중국 시장 때문에 억지로 사과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사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반응이다. 중국 당국도 민감한 대만 총통 선거 직전 반중 정서에 불을 붙인 ‘사과 동영상’을 올린 박진영 대표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제이와이피의 대응에는 어린 가수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중국과 대만의 정치·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이익이 큰 중국 시장에서 빨리 사태를 진화해야겠다는 조급함만 드러낸 무리수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쯔위 사태’가 한국, 중국, 대만을 뒤흔든 이번주 초, 중화권 최고 유력 주간지 <아주주간>의 표지기사는 ‘한류의 중국화’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맷을 그대로 수입해 중국 출연진을 등장시킨 프로그램이 대유행이다. <무한도전>을 토대로 상하이의 제작사와 문화방송 제작진이 공동 제작한 <대단한 도전>, <런닝맨>을 틀로 삼은 <달려라 형제>를 비롯해 중국판 <아빠 어디 가> <나는 가수다> 등 한류 예능프로그램이 20여편 방송되고 있다. 국영방송으로 정치적 선전 색채가 강한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대단한 도전>을 방송하면서 메인뉴스에서 대대적으로 이를 홍보까지 하고 나설 정도다.

한국의 대표 피디들이 아예 직접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한·중 합작 3.0 모델도 등장했다. 한국 예능피디의 상징 김영희 피디는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중국 연예인들이 부모와 함께 지내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폭풍효자>(중국명 旋風孝子)를 제작해 후난위성텔레비전에서 방송한다.

중국 문화산업은 한류가 필요해 거액을 쓰고, 한국 방송사·기획사들은 거대 시장의 힘에 매혹돼 중국에 ‘올인’하는 현실이다. 중국 정부의 사전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한국 방송사들은 드라마 사전제작에도 앞다퉈 나서고 있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이런 ‘공생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성공한 포맷 수출이나 중국 검열 기준 맞추기에 급급하다가 더이상 참신한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해 중국인들이 식상해하면 어떻게 될까? 시장은 황홀해 보이지만 복잡한 정치가 언제든 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중국에서 시장의 이익만 보고 움직이는 한류의 현실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중국 시장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지역 팬들의 정서, 연예인의 인권은 무시되는 한류 모델은 지속가능한가? 쯔위 사태는 수많은 질문과 경고를 던진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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