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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클레멘테의 마지막 비행 / 김양희

등록 2015-12-22 18:37수정 2015-12-22 18:37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로베르토 클레멘테는 1955년 라틴아메리카 출신 흑인 야구 선수 최초로 피츠버그 파이리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우익수로 수비는 일품이었으나 한동안 타격은 기대 이하였다. 서툰 영어 때문에 음식점 주문을 못할 정도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인종 차별로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가 쏟아진 탓도 있었다.

1960년대 들어 클레멘테는 비로소 타격에서도 꽃을 피웠다. 1960년부터 1972년까지 13시즌 동안 단 한차례(1968년)만 제외하고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4차례나 타격왕에 올랐다. 1966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수비 기준으로 뽑는 골드글러브는 12년 연속 받았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가난한 노동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클레멘테는 오프시즌 때마다 남아메리카에서 자선활동을 이어갔다. 서른여덟살의 나이에 통산 3천안타(역대 11번째)를 기록했던 1972년 시즌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2월23일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강진이 발생하자 그는 즉시 응급구조 비행기를 수소문해 의료품과 식료품을 보냈다. 하지만 3차례나 보냈던 구호물품이 부패한 지역 관리에 의해 모두 빼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이 직접 니카라과행 화물 수송기에 올라탔다. 그때가 12월31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탄 비행기는 과적과 기계 결함으로 바다에 추락했고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1973년부터 사회 공헌에 이바지한 선수에게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는 강정호의 팀 동료 앤드루 매커천이 받았다. 클레멘테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항상 당신에게 있는데도 그것을 모른다면 당신은 주어진 시간을 그저 낭비하는 것이다”였다. 그에게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은 ‘기회’가 지금 당신에게는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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