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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떠도는 집 / 서해성

등록 2015-12-04 19:05

호남선이 갈재를 오르기 위하여 몸을 움츠렸다가 펴는 들판에 천원역이 있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드물어 한동안 무인역이더니 하루에 화물기차 두어 편 멈췄다가 떠나는 기능마저 올해로 닫힌 폐역이다. 이 역두에서 한 마장 걸으면 그 집이 있던 동네가 나온다. 산이 갓을 쓰고 오다 돌아보는 입암산 아래 들판 정읍 대흥리에 옛 흔적은 희미하다. 한자 편액이 걸려 있는 한식 가옥 몇 채가 남새밭 사이에 가까스로 서 있달 뿐이다.

갈재 일대는 이 땅이 도탄에 빠지고 국난에 처했을 때 동학, 증산, 원불교 등이 새 세상을 꿈꾸면서 등장한 내력 깊은 미륵 터전이다. 그중 강증산 사후 세력을 추슬러 나타난 보천교는 조선총독부 기록으로 이백만 신도를 거느렸다. 교단 주장으로는 육백만을 헤아린다. 동학군의 아들인 교주 차경석은 공간이 아닌 때에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것일까. 국호는 시국이다. 교세 확장 시기는 3·1운동이 현실에서 구체로 귀결되지 못하면서 형성된 대중적 좌절감의 유동성과 대체로 일치한다.

대흥리에 있는 그 본소 건물 이름은 십일전이었다. 네 면 돌계단 위에 세운 목조 단층 건축물은 앞에서 보았을 때 일곱 칸, 옆으로 네 칸짜리로 근정전보다 칸이 하나 더 많고 건립 비용이 서울 남산 조선신궁보다 더 들어갔다고 한다. 신흥종교를 중심으로 일을 이끌어간 지도자를 천자라고 칭했던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세력이 근대적 세계관을 온전히 구조화해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게다. 조선이 사라지고 왕실도 멸실된 상황에서 이들은 민족을 내세웠으되 복고적으로 과장된 기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중적 접점을 만들어갔음직하다.

네 해 걸려 지은 본당 일대 해체는 교주의 죽음(1936)과 함께 찾아왔다. 이 과정에 총독부가 적극 개입했다는 건 이들이 민족운동적 측면에서 적어도 잠재적으로 위험한 세력이거나 그러한 성향에 가까웠음을 방증한다. 다른 한편 친일 혐의 또한 꼬리표가 붙어 있기는 하다. 어쨌든 훈춘이나 개마고원 등지에서 베어 온 나무로 지었다는 십일전은 헐값에 뜯겨나가 서울로 향했다. 이 고래등 기와집은 경복궁 동쪽 끝자락에서 머잖은 터에 대웅전 이름을 달고 재건축(1938)되었다. 듣기에 십일전을 덮고 있던 청기와는 총독관저 지붕이 되었다고 한다. 도성 출입마저 편치 못했던 조선 사회를 생각한다면 감개가 무량한 일이었지만 이는 총독부의 조선불교통합기관 설립 지원과 무관하지 않다.

내쫓긴 자들의 집을 옮겨서 짓고 두루 세월을 누려온 이 집(조계사)에 노동자 한 명이 뛰어들었다. 쫓기는 자의 주소는 떠도는 내력을 지닌 그 집이야말로 적소다. 나무꾼이 선녀를 얻은 건 먼저 사슴을 구해준 까닭이다. 공덕이란 화살 맞은 자를 위할 때 쌓이는 것일 게다. 절은 승려들의 세력공간도, 쫓겨 들어온 자를 몰아내는 신도들의 옹졸한 거처도 아니다. 대중의 절을 받을 때 절은 비로소 절일 수 있다. 권세는 청기와 아래도 넘치고 몰이꾼은 포도청 사람들로도 충분하다. 대웅전에 사는 건 불상이 아니라 부처다. 이천만 노동자 운명이 피신해 있다는 간절함이 들리지 않는다면 부처의 귀는 어째서 그토록 큰가.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절하고 싶은 절, 절로 비손하고픈 절, 바깥으로 절하는 절이 아니라면 절은 떠나고 집만 남게 될 터이다. 어디 절뿐이겠는가. 민주주의란 광장을 도량으로 삼아 깨닫는 대중 득도다. 민심이 떠돌고 또 모이는 곳이야말로 가장 큰 수도처다. 거기가 오늘은 광화문이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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