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뒤흔든 문화대혁명은 한 역사학자의 역사 해석을 비난하는 한 편의 글에서 시작됐다.
1965년 11월10일 <문회보>에 역사학자 우한이 쓴 <해서파관>을 비난하는 글이 실렸다. 명나라 때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은 탐관오리를 처벌했다가 억울하게 파면된 관리 해서를 옹호한 <해서파관>이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다 쫓겨난 펑더화이를 편들고 마오를 교묘하게 비판했다는 아전인수 해석이 이후 10년 동안 중국을 짓밟은 비극의 신호탄이었다. 혁명 정신을 되살려 중국 사회를 개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마오쩌둥의 권력욕으로 얼룩진 문화대혁명은 마오 개인숭배, 홍위병들의 파벌 투쟁, 내전을 방불케 하는 혼란으로 나아갔고, 반혁명 분자로 몰린 수많은 이들의 삶을 잔인하게 파괴했다.
“역사학계 90%가 좌파” “0.1%의 교학사 교과서를 뺀 99.9%의 교과서는 종북 좌파 교과서”라는 기괴한 인식 위에서 강행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식 ‘문화대혁명’의 신호탄이었을까. 정부는 이제 현실에 절망해 시위에 나선 국민들을 폭도, 비국민으로 낙인찍고 있다. 행정고시 최종면접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이 없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등의 사상검증 질문까지 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작품을 연출했던 예술가들이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자 이들을 배제하거나 지원 포기를 종용했고, 국립국악원은 아예 해당 예술가의 공연을 취소시켰다. 청와대 각본에 따라 공영방송을 뉴라이트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의혹이 이는 가운데,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사법부, 공무원, 검찰에도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 등의 막말을 거침없이 내놨다.
거리에선 어버이연합 같은 아스팔트 우파들이 활개치고, 인터넷에선 일베가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판 홍위병의 등장이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이념간, 세대간 전쟁’을 부추기며 정치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좌익 대 우익뿐 아니라 노인 대 청년, 정규직 ‘귀족 노동자’ 대 비정규직… 정부가 나서 우리 사회에 수많은 금을 긋고,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는 점점 더 노골적이다. 부모 세대를 맘대로 해고할 수 있어야 젊은이들이 취직할 수 있다는 선전을 앞세워 쉬운 해고와 파견근로 대폭 확대 등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실은 어떤가?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 결과, 상위 10%가 우리나라 자산의 65%를 소유하고, 하위 50%는 1.7%만을 가졌을 뿐이다. 법인세 인하, 골목상권 장악, 비정규직 고용 등으로 재벌들에 이익이 집중된 결과, 2009~2013년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234조원이나 늘었다.
민주주의는 급속히 퇴행하고, 불평등은 끔찍해지고, 경제는 고사해가고, 정부는 무능하지만, 약자들끼리는 서로를 노인충, 맘충, 진지충, 일베충으로 증오하는 슬픈 풍경이다. 기득권 세력에 불리한 모든 구조를 깨려는 듯한 이 정부의 ‘문화대혁명’에 맞서, 약자들은 연대해 정당한 분배와 복지, 일자리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평생 독재에 맞섰던 사상가 함석헌 선생의 성찰은 지금 더 절실하다. “서로 짓밟는다니 서로 사람대접하지 않고 사람대접받지 못하고 사는 살림이다. (…) 힘센 자가 한없는 제 욕심을 채우려 남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마구 빼앗기 때문이다. 본래 정치란 것은 그것을 금하자는 것인데 정치 자체가 그렇게 될 때 세상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함석헌 저작집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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