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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창조 나라’ 망치는 ‘돌쇠’와 ‘똘끼’들에게 / 최우성

등록 2015-10-20 18:36

이 나라의 국시는 창조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콕 찍어 말하고부터다. 정부가 걸어가는 모든 길은 창조경제로 통한다.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입니다.” “창의와 열정이 가득한 융합형 인재”라는 친절한 설명도 붙었다. 그런데 창조 나라 구석구석이 심하게 삐걱거린다. 아니, 바싹 말라붙었다. 역시나 사람이 문제더라. 애초부터 창조라는 두 글자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돌쇠’와 ‘똘끼’들이 즐비하다. 존엄한 국시를 짓밟는 대표 인물들 몇을 추려 고발하려 한다.

최근 돌쇠와 똘끼들이 잔뜩 흥이 오른 무대는 역사 마당이다. 앞으로 창조 나라에선 나라가 정한 단일한 내용의 역사만 배우고 가르쳐야 한단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해석은 이렇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알아야 할 내용만 딱 정리할 것이므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학습(입시) 부담 줄이기를 끌어댔다. 주무부서인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 얘기도 들어보자.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 누구보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교육관료 머릿속을 꿰찬 ‘분열이냐 하나냐’의 구도가 섬뜩하다. 대통령 취임사 몇 토막만 되새겨보자. “창의성이 상실되는 천편일률적인(…), 우리의 미래도 얼어붙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훨씬 거친 목소리도 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여당 대표의 생생한 육성이다. 자칭 보수 원로 인사들이 발표한 선언문엔 이런 구절도 있다. “현 역사교과서는 청년층 자살과 정신질환의 원인이다.”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는 자학사관 때문이란다. 끊임없는 성찰과 재해석의 대상인 역사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전쟁 도구로 전락했다. 역사야말로 비판적 성찰과 풍부한 상상력의 밑거름이며, 비판과 상상력이야말로 창조의 첫걸음 아니던가. 깨부수지 않고는 창조란 없는 법.

새누리당과 교육부 관료한테서 올바른 역사관은커녕 아예 자아가 결핍된 돌쇠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면, 여당 대표와 보수 원로의 거친 입은 자아의 과잉이 빚어낸 똘끼의 전형이다. 둘 다 창조 나라의 기초를 갉아먹는 ‘내부의 적’이긴 매한가지다. 숱한 창조 타령에도 이 땅에 아직 창조의 훈풍이 몰아치지 않는 이유다.

비단 역사교과서 문제 하나뿐일까. 금융개혁 한다더니 느닷없이 “오후 4시면 문 닫는 금융사가 어디에 있느냐”며 은행 직원 연봉과 영업시간 문제를 들고나온 경제부총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가문의 영광 소리를 들을 법한 은행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점포 영업시간을 바꾸겠다고 즉각 화답하고 나선 건 더 큰 웃음거리다. 입으론 창조금융을 외치지만, 속으론 창조가 두려운 ‘관치공동체’의 민낯이다.

억울할 것이다.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국시를 창조로 정한 대통령 본인이 고집스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지 않나. 누구나 다 안다. 기대를 접었을 뿐. 정말로 억울하고 변명하고 싶다면, 할 일이 있다. 주위를 살펴보라. 기상천외한 패러디가 꼬리를 물고, 꽉 막힌 정부를 조롱하는 상상력의 나래가 펼쳐진다. 진정한 창조의 마당이 여기인가 싶을 정도다. 이제라도 돌쇠와 똘끼의 흔적을 몸뚱어리에서 지워내고 국시인 창조를 꿋꿋하게 지키는 일에 매진하는 게 옳다. 본능적으로 알지 않나.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땅에 진짜 창조경제를 활짝 꽃피워야 한다.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창조경제는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불행히도, 정반대 명제도 성립할 게다. 켜켜이 먼지 쌓인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으며, 눈길은 ‘한 사람’에 오래 머문다. 누군지 누구나 다 아는 그 한 사람.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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