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하나.
정치부장에서 디지털에디터로 보직이 바뀐 지 딱 1주일 됐다. 1년6개월간 매일 아침 다른 신문에 ‘물 먹은 게 뭔가’를 훑고, ‘오늘은 1면용으로 뭘 올리나’를 끙끙대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지금 이 시간, 인터넷에서 어떤 <한겨레> 기사가 가장 많이 읽히는지 체크하고, 클릭 수가 많지 않은 기사는 그때그때 바꾼다. 자연스레 어떤 기사가 많이 읽히는지, 같은 기사도 제목을 어떻게 뽑고 어떻게 써야 더 많이 읽힐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염석진 향한 분노, 국정교과서엔…’이라는 기사에 염석진 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이정재 사진이 물린 것을 보고, “사진을 전지현으로, 제목에 ‘안옥윤’도 넣고”라는 식으로 바꿨다. ‘이정재’보다 ‘전지현’이 독자를 더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뇌 구조가 바뀌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서 ‘무엇이 더 읽히나’ 쪽에 먼저 생각이 미친다. 디지털의 습성상 ‘언론사들이 디지털을 강화하면 할수록 지금보다 더 진영 논리가 강한 기사가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론 자해 행위가 될 것이다. 언론이 이런 식으로 가면, 영향력은 높일지 몰라도 공적 신뢰는 스스로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 이야기 둘.
독일 최대 언론사인 ‘악셀 슈프링거’는 2012년 디지털뉴스 유료화를 선언했다. 신문용 기사를 별도 제작하지 않고, 디지털 기사 중 일부를 골라 신문에 그대로 옮겨 싣는다. 악셀 슈프링거 소속 일간지 <디 벨트>(Die Welt) 취재기자 300명 중 종이신문 제작 인력은 12명이다. 현재 <디 벨트>의 종이신문 구독자가 10만명인데, 유료 디지털뉴스 구독자가 6만6천명이다.
너무 쉽다. 우리도 그대로 따라하면 될까? 2013년 콘텐츠기획부장을 맡았을 때, 악셀 슈프링거 베를린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악셀 슈프링거는 <디 벨트> 외에 가판대 신문인 유럽 최대 일간지 <빌트>(Bild) 등 일간지만 전국지 7종, 지방지 7종, 잡지 23종을 펴낸다. 기자가 기사를 보내면 일간지 여러 곳에 게재되기도 한다. 부장·에디터만 60명이다. 한국은 보통 10명 안팎이다.
미국·유럽 중앙지 기자는 소규모 신문사 등을 거친 경력기자들로 채워진다. 기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강하다. 취재 지시보단 자발적 기획이 활발하다. 데스크는 판단과 교통정리를 한다. 악셀 슈프링거를 방문했을 때 드넓은 편집국이 고즈넉할 정도로 조용했다. 한국처럼 전화통에 대고 기자에게 세세하게 취재 지시를 하는 데스크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 신문사의 구조는 구미가 아닌 일본형이다. 수습기자를 도제식으로 가르치고, 데스크의 권한이 막강하고, 톱다운 방식의 지시와 데스킹…. 기자들은 취재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서구 신문사 문화가 프랜차이즈형 대리점에 가깝다면, 한국·일본 신문사 문화는 직영 백화점 구조에 가깝다. 그러니 구미형을 따르려면 겉조직뿐 아니라 속까지 바꿔야 한다. 워크플로와 신문 작법은 그대로 둔 채 디지털 기사 먼저 쓴다고 ‘디지털 퍼스트’가 될까? 상투는 그대로 둔 채 양복만 입은 꼴이다. 그런데 상투를 자르는 게 옳은 건지도 알 수 없다. 독일은 안정된 사회이고,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큰 일이 뻥뻥 터지는 곳이다. 여유롭게 취재기자에게 맡기고 호흡 긴 기획기사로 승부하겠다면, 그 언론이 지금 한국에서 제 역할을 얼마나 하게 될까? 언론의 디지털화, 개별 언론사 수익 차원을 떠나 공적 기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다.
글 쓰기 전 가제를 ‘신문의 길, 디지털의 길’로 달았다가, 다 쓴 뒤 ‘이정재 사진을 전지현 사진으로 바꾼 이유’로 고쳤다. 덜 점잖아지고 있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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