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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사라진 혁명가 / 황상철

등록 2015-10-04 18:46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했던 아바나의 혁명광장은 거대한 두 얼굴이 내려다본다. 한명은 내무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다.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1928~1967)다. 그리고 정보통신부 건물 외벽에는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있다. 체 게바라 못지않게 쿠바인의 사랑을 받는 카밀로 시엔푸에고스(1932~1959)다. 그가 27살의 나이에 사라진 날이 되면 쿠바인들은 대서양에 꽃을 던지며 그를 기린다.

시엔푸에고스는 1958년 12월30일 야과하이 전투에서 정부군을 격파해 쿠바혁명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가 이끄는 부대 등이 12월31일 산타클라라를 점령하자 독재자 바티스타는 1959년 1월1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도주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에 이어 사실상 혁명정부의 3인자였다. 혁명에 성공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병영을 학교로 개조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한 뒤 “카밀로, 나 지금 잘하고 있어?” 하고 묻자, 그는 “잘하고 있어, 피델”이라고 답했다. 당시 그가 한 대답은 현재 그의 거대한 철골 얼굴 아래 적혀 있다.

혁명에 성공한 그해 10월 피델 카스트로는 한 혁명동지가 반혁명을 꾀한다고 의심했다. 카스트로는 시엔푸에고스를 보내 그를 체포하게 했다. 시엔푸에고스와는 절친한 친구였다. 친구를 체포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10월28일 밤, 그는 아바나로 돌아오려 세스나 항공기를 탔다. 비행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엔푸에고스가 실종되자 카스트로 형제가 그를 시기해 살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피델의 명성에 견줄 만한 명성을 시엔푸에고스가 얻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체 게바라는 소문을 일축했고, 아들의 이름을 ‘카밀로’라고 지어 실종된 친구를 추모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실종사건의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따라다녔다. 54년 만에 이뤄진 쿠바와 미국의 국교정상화로 미스터리가 조금이나마 풀릴지 궁금하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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