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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아하, 역사의 반환점은 멀었구나 / 염무웅

등록 2015-10-01 19:01

해방정국은 자칭 타칭 지사·투사들의 전리품이 아니었다. 당대의 정치가들은 민중과 역사 앞에 더 겸손했어야 했다. 이 나라에서 이른바 정치한다는 사람들 하는 짓은 70년 전과 달라진 모습이 아니다.
한용운(1879~1944)과 함석헌(1901~1989)은 언뜻 서로 연결이 안 되는 분들이다. 한 분은 스님이자 독립지사이고 시인이었으며, 다른 한 분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지적 배경을 가졌음에도 그들은 끊임없는 ‘글쓰기’와 치열한 현실참여를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민족적 과제에 평생 헌신했다는 점에 상통하는 바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한창 원숙할 나이인 40대에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적 국면과 마주쳤다. 알다시피 한용운은 우리 나이로 마흔 되던 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것을 보았고 이 변화에 대응하여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했다. 그리고 이듬해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3·1 독립선언에 참가하여 적극 활동했다. 검찰에 잡혀가 심문을 받게 되자 검사에게 자신의 소신을 설명하는 글을 제출했던바, 그것이 유명한 <조선독립이유서>이다. 국한혼용의 원문을 현대적으로 풀이한 그 글의 한 대목을 <한용운전집>(1973)에서 옮겨본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전쟁과 기이하고도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침략주의의 전별회(餞別會)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저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회담 기초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선언이 그것이요 체코의 독립이 그것이며 아일랜드의 독립선언이 그것이고 또한 조선의 독립선언이 그것이다.”

요컨대 유럽전쟁, 즉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침략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평화주의가 개막되리라는 것이 한용운의 역사인식이었다. 이 낙관에 기초하여 그는 재판정에서도 조선의 독립이 필연의 대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한용운 같은 이상주의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강화되고 강대국들의 침략 야욕은 더욱 기승을 부려,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새로운 전쟁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암울한 시대에 함석헌은 벗들과 함께 성서연구 모임을 만들어 <성서조선>지를 간행하고 기독교적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해석했다. 이때 그가 자주 우리 역사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비교한 것은 오랜 고난의 세월 끝에 도래할 구원의 가능성을 자신과 동지들 가슴에 새겨넣기 위해서였다. 이런 활동으로 옥살이까지 겪고 난 다음 나이 마흔다섯에 닥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즉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이었다. 이 거대한 역사적 전환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던가.

8·15 해방은 함석헌에게 압제와 수난의 종말이 아니었다. 광복 직후 고향인 평북의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으나 신의주학생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투옥되었고, 1947년 자유를 찾아 월남했으나 남쪽에서 발견한 것 또한 부패와 혼란 그리고 정치적 야심가들의 끝없는 분쟁뿐이었다. 그의 첫 저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1950)는 이 시기 남북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함석헌 자신이 몸으로 겪은 경험의 직접적 반영이었다. 그 책에서 한두 대목 읽어보자.

“이 해방은 도적같이 온 해방이다. 고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라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이것이 어느 파(派)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니요 순전히 하늘에서 떨어져 온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새살림의 첫걸음이다. 이 해방에 관련된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민중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돌아온 때에 ‘우리가 꿈인가 하였노라’ 했다. 참 우리도 꿈 아닌가. 그런데 해안에 올라온 후에는 무엇인가. 서로 제힘으로 올라왔노라는 싸움만이 벌어지지 않았나. 해방 후 제주도에 가장 비참한 사건이 있었고 지금도 오히려 완전한 평온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의 앞길을 예표(豫表)하는 무엇이 있다는 감(感)을 금할 수 없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 해안에서 상당한 신산(辛酸)을 겪은 후가 아니고는 저 새 나라의 봉(峯)에 오를 수가 없는 모양이다.”

57년 전 고등학생으로 처음 읽을 때나 제법 세상을 살고 나서 읽는 지금이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함석헌의 이들 문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음을 느낀다.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이런 단정에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동조하기 어렵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초를 겪고 목숨을 바친 분들에 대한 마땅한 존중도 없다. 그런데 수정 보완된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5)의 해당 부분을 살펴보니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같은 격한 표현은 사라졌고 기독교 색깔도 많이 완화되어 있다. 나 자신도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라는 언명에 대해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음미해볼 여지가 있다는 양보심이 생긴다. 함석헌이 개탄했듯이 해방정국은 자칭 타칭 지사·투사들의 전리품이 아니었다. 해방이 어디서 온 것이든 당대의 정치가들은 민중과 역사 앞에 더 겸손했어야 했다. 적어도 정치지도자들만은 해방이 자기들 공적이 아니라 하늘의 선물이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옳았다. 오만은 비극을 불러왔으니, 앞의 인용에서 보듯 함석헌은 정치적 혼란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무서운 비극을 예감했다. 불길한 예감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출간 석 달 만에 끔찍한 현실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김구 같은 우파도 김일성·박헌영 같은 좌파도 민족의 역사 앞에 문책을 면할 길이 없다.

해방 70년을 맞아 새삼 함석헌의 저서를 훑어본 까닭은 실은 그의 독특한 비유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사의 진행에서 “뒤로돌앗!” 구령 소리가 나면 맨 앞에 가던 자가 꼴찌가 되고 맨 뒤에 쫓던 자가 선두에 서게 되는 역전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때 외침과 학정으로 한없는 고통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은 역사의 반환점을 맨 먼저 돌아 세계의 첨단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는 묻는다.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면 했지 왜 하필 조선에 와서 남북을 반쪽으로 갈라놓았는가. 이런 물음 끝에 그는 세계를 구원할 사명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는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결코 세계문제를 해결 못할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도 아닐 것이다. 지금의 기독교를 가지고도 안 될 것이요, 기타 현존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도 안 될 것이다. 인류는 지금 근본적으로 새로운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 그 새로운 무엇이란 정치의 혁명, 기술의 혁명, 무력에 의한 혁명이 아니라 마음의 혁명, 혼(魂)의 혁명, 인생 그것의 거듭남이라고 그는 말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염무웅 문학평론가
그러나 100년 전 한용운의 희망도 70년 전 함석헌의 예언도 오늘의 현실에서는 요원한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민족들 간의 분쟁은 때로 더 심한 참화를 낳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수백 수천 명씩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들 보도는 바야흐로 지금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라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나라 일본은 안보 관련 법안들의 제정·개정으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니! 설마 자기 나라 안에서 전쟁할 권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터이므로 그것은 곧 ‘침략할 수 있는 나라’를 뜻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이른바 정치한다는 사람들 하는 짓은 70년 전과 달라진 모습이 아니다. 아하, 역사의 반환점은 멀었구나.

염무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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