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을 처음 만난 건 2009년 초겨울 무렵이었다. 무력감과 피로감 탓에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때였다. 휴가를 내고 제주로 떠났다. 여행의 콘셉트를 스스로 ‘관계 단식’이라 정했다. 나를 둘러싼 관계망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 싶었다. 혼자 하기엔 걷기만큼 좋은 게 없었다. 보름가량 혼자서 올레길을 걸었다.
프레데리크 그로는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 걷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멈춤의 자유’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2009년 내가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 그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의 속박과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조직망의 매듭 하나로 축소되지 않기’. 그로는 “걷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고 했다. 길을 걷다 보면 나무, 들판, 오솔길 등 자연과 풍경이 길동무가 되고, 걷는 이의 육체와 영혼이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걷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나와 동행한다.” 그로의 말처럼, 올레길 걷기는 혼자였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사실 그 이전까지도 제주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가족여행과 출장을 합하면 족히 예닐곱 차례는 다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올레길의 제주’는 그동안 봐왔던 제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겹고 아름다웠다. 숲길을 걷는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사방이 탁 트이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쪽빛 바다, 같은 듯 다른 크고 작은 오름들, 오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 마을과 밭의 돌담…. 제주의 속살이 내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처럼 제주의 진면목을 보게 된 건 순전히 걸었기 때문이다. 이전 몇 차례의 여행이 차를 타고 ‘점’(관광 명소) 몇 군데를 ‘찍고’ 다닌 것이었다면, 걷기는 죽 이어진 선을 따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여행이다. 성산일출봉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에는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 곧바로 일출봉에 올랐다. 내려와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관광지로 옮기곤 했다. 그러나 올레길에선 일출봉을 죽 바라보며 걷는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일출봉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꼭 일출봉과 같은 관광 명소가 아니더라도, 걷다 보면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놓치기 쉬운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광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걷는 속도에 맞춰 느리게 바뀌는 풍경은, 차에 타고 있을 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즐거움을 준다.
도피의 여정으로 내디딘 발걸음이었지만, 올레길 걷기는 놀라운 치유의 경험을 선사했다. 온몸의 감각이 열리고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하루의 걷기가 끝나갈 무렵 황혼과 함께 밀려드는 기분 좋은 피로감은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올레길에서의 치유 경험은 지금도 쉬는 날이면 나를 집 밖으로 이끄는 힘이다. 집에서 가까운 숲길은 줄잡아 30번은 걸은 것 같다. 때때로 다른 지역의 낯선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행위인 걷기가 이토록 큰 행복감을 주는 이유는 뭘까? 다비드 르 브르통은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 이렇게 썼다. “걷기는 나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길을 걷는 사람은 잠정적으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다. 더는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조건, 타인들에 대한 책임감에 파묻히지 않는다. 걷기는 자신의 역사와 잠시 휴지기를 갖고 길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라는 브르통의 말만큼 걷기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을 듯하다.
이종규 사회2부장 jklee@hani.co.kr
이종규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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