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여론상황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통일 논의가 전례 없이 풍성해졌다는 사실이다. 시초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13년 12월21일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조선일보>)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2014년 들어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국정의제로 선언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기구로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여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정책에 관여했던 유력한 인사들까지 참여해 위원회가 번듯한 모양새를 갖추는 데 일조했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띄운 것을 전후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통일에 관한 대형 기획물을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사는 민간이 통일 준비에 앞장서자면서 ‘통일과 나눔’이란 재단을 만들고 통일나눔 펀드를 모금하기 시작했다. 기업과 관공서 차원의 단체 참여가 꽤 많은데, 통일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고 조선일보의 사세도 작용한 까닭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들이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통일 기운이 자꾸 조성된다면 통일운동을 누가 하든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통일을 위해 정작 필요한 남북 당사자 간의 대화와 교류협력을 전혀 진전시키지 못하고 아까운 2년 반 세월을 허송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목함지뢰 사건을 놓고 거칠게 대치하다 겨우 남북 대화의 출발선을 만든 정도다. 통일 논의가 겉으로만 무성하고, 실제로는 통일에 전혀 다가서지 못하는 모순된 현실이 조성된 셈이다.
그런 까닭이 좀 아리송하던 터에 박 대통령이 9월4일 방중 마무리 기자간담회에서 ‘한-중 통일 논의’ 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등을 다 해결하는 궁극적이고 확실한 가장 빠른 방법은 평화통일”이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안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외교적)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 등을 다 해결하는…평화통일”이라고 말할 때 박 대통령은 남한 주도로 북한을 그것도 조속하게 통일하면 북한이 개발해 놓은 핵무기를 자동으로 해소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으로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간단하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국들이 협의할 필요가 뭐가 있나? 바로 엊그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만나 북핵 관련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요청한 것은 빈말이었단 말인가? 언제 될지 모르는 통일의 그날까지 북핵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미국 등 관련국들이 박 대통령의 진의를 궁금해할 상황을 만들었다.
통일의 당사자인 북한을 빼놓고 주변국들과 ‘통일외교’를 한다는 생각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당장 중국이 통일외교에 응할 생각이 없음을 비쳤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통일을 주장하자 시진핑 주석은 “남북 간 장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맞받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천명한 이래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이 거듭 확인해온 당사자 간 자주적 대화의 원칙을, 시 주석이 박 대통령한테 일깨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평화통일은 당연히 남과 북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교류협력을 강화하며 국제사회에서도 남과 북이 협력해야 한다. 과거 우리 사회에는 평화통일론과 무력통일론이 충돌하다가 전두환 정부가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발표한 1982년 이후 무력통일론은 공론의 장에서 사라졌다. 통일을 입에 올린다고 모두 통일론이 아니다. 이제 통일론도 남과 북이 ‘함께하는 통일’인지, 아니면 혼자 하겠다는 ‘무늬만 통일’인지를 구분할 때가 됐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박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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