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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도발하면 틀어라, 또 도발하면 울려라…‘음파 신공’의 위력

등록 2015-08-26 18:39수정 2015-08-27 16:09

[김종구 칼럼]
군, 확성기 통한 대북 심리전 매우 적절했다고 자평
사고 당한 하사들 뒤에 숨은 장군들의 모습은 초라

한반도 전쟁 위기는 위정자들의 외교 실패 결과물
‘2년반 무득점’ 행진 박 대통령 ‘만루홈런’ 날리길
강원도 화천군 중동부전선 휴전선지역에 설치됐던 대북 방송용 확성기. 연합뉴스
강원도 화천군 중동부전선 휴전선지역에 설치됐던 대북 방송용 확성기.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을 한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은 특유의 걸걸한 입담으로 기억할 만한 명언을 많이 남겼다. “전쟁이란 우리 병사들이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병사들이 자기 조국을 위해 죽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도 그가 남긴 어록이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때마다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군 수뇌부의 태도를 보노라면 조국을 위한 우리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승리의 징표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아무리 작은 싸움이라도 이겨야 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다. 하지만 위정자의 책무는 다르다. 패튼의 어법을 빌려 이야기하면 “우리 쪽과 상대편 병사들 모두 자기 조국을 위해 죽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모든 전쟁은 비참하고 고통스럽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전장에서 숨져간 사랑하는 아들 형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뢰로 날아가 버린 하반신과 발목도 다시 돋아날 수 없다. 영국의 정치가 토니 벤이 말했듯이 “모든 전쟁은 외교 실패의 결과물”일 뿐이다.

지뢰폭발 사건으로 촉발된 위기가 수습된 뒤 온 나라가 경축 분위기다. 정치권과 군, 언론 모두 ‘해피엔딩’의 축포를 쏘기 바쁘다. 과연 끝이 좋으면-아직 끝이 좋다고 판단하기도 이르지만- 과정도 모두 잘된 것으로 치부해도 좋은 걸까.

우리 군 수뇌부는 이번에도 역시 지뢰폭발 사고를 당한 하사들의 헌신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을 홍보하기 바빴다. 이들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전우애는 칭찬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럴수록 ‘하사 뒤에 숨은 장군들’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군 지휘부의 책무는 북한군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공격 형태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 놓는 일이다. 그런데 군은 북한의 지뢰 공격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허를 찔렸다. 이는 치명적인 직무유기다.

군은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이 매우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자평한다. 북한이 화들짝 놀라 협상을 제의해오고 결국 지뢰폭발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까지 한 것에서도 확성기의 위력이 새삼 확인됐다고 흐뭇해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군의 교전수칙은 명확해졌다. 북한군이 도발하면 곧바로 확성기를 튼다. 또 추가 도발을 해오면 확성기의 대수를 늘리고 볼륨을 더욱 높인다. 어차피 ‘원점타격’이라는 것도 포격이나 총격이 아닌 제3의 공격에는 별로 쓸모없는 개념으로 확인된 터다. 우리 군의 가공할 만한 ‘음파 신공’에 북한군은 혼비백산해 화평을 구걸해올 것이니, 이쯤 되면 ‘창조 국방’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은가.

군의 우왕좌왕 못지않게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의 초기 대응도 허점투성이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북이 포격을 가해와 체면을 만회할 기회를 준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한반도 위기 상황은 결국 남북 위정자들의 외교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북한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남쪽 역시 ‘불신 프로세스’를 차곡차곡 쌓아온 게 위기의 근원이다.

고위급 회담 타결 결과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원칙의 승리’니 ‘북한의 악습을 끊게 한 쾌거’니 하는 자화자찬을 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남북 합의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다. 타협은 “모든 사람이 자기 몫이 더 크다고 믿도록 케이크를 나누는 기술”이다. 회담 결과를 놓고 남과 북은 벌써부터 제 논에 물 대기 식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식의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실로 위험천만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외교를 야구에 비유하는 말이 있다. “때릴 때 때리고, 달릴 때 달리고, 우아함을 보여줄 때 우아함을 보여주라.”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면 정확히 타격해야 할 때 헛스윙을 하거나, 달리지 말아야 할 때 홈을 향해 무리하게 질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제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임기 내내 ‘업적 제로’의 길을 걸어온 박 대통령에게 어쨌든 남북관계에서 만루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잘못된 판단과 전략으로 모처럼 맞이한 대량 득점의 기회를 흘려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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