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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교육부 선진화 방안’이 필요해! / 이종규

등록 2015-08-26 18:32

상품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서도 ‘네이밍’(이름 짓기)은 중요하다. 정책의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는 종종 현실을 호도하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다. 실상은 문제투성이인데,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우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세금 구제’(tax relief)란 말을 예로 들어 프레임 구성에 대해 설명한다. ‘세금 구제’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줄곧 써온 말로, 감세정책을 의미한다. 세금은 고통이고, 감세는 국민들을 그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좋은 정책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감세는 재정지출 축소, 곧 복지 축소로 이어져 대다수 서민의 삶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지만, 이런 ‘나쁜 현실’은 ‘구제’라는 말에 가려진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정책 중에는 ‘선진화’란 말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공공기관 선진화, 노동시장 선진화,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학부교육 선진화,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선진화’의 사전적 의미는 ‘문물의 발전 단계나 진보 정도가 다른 것보다 앞서게 됨’이다. 뜻으로만 본다면 마다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이름으로 시행되는 정책의 내용이다.

최근 부산대 고현철 교수의 투신을 불러온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핵심 과제로 추진됐다. 국립대를 ‘선진화’하려면 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이므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직선제는 졸지에 후진국형 제도로 전락하고 만다. 직선제 폐지에 저항하는 교수들은 낡은 제도에 집착하며 선진화를 가로막는 존재로 매도된다. 여론의 우위를 자신한 교육부는 외곬으로 치달았다. 직선제를 거부한 대학은 ‘구조개혁 중점추진 국립대’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개혁 대상’으로 몰린 셈이다.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학들을 겁박해서 도입한 ‘총장 공모제’의 실상은 선진화와는 거리가 멀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은 교수와 외부 인사 등으로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꾸려 총장 후보자를 선출했다. 이른바 ‘임의추출식 총장추천위원회 선출’ 방식이다. 선거 당일 아침, 추천위원 후보군 중에서 투표자를 무작위로 고른 뒤 전화를 돌려 투표 참여 의사를 묻고, 거절하면 다시 추첨해 전화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추천위원들의 대표성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간선제로 보기도 힘들다. 교수사회에서 ‘로또식 선출’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왔다.

총장 선출 이후 상황은 선거 방식만큼이나 기형적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고현철 교수 유서)이 되풀이됐다. 교육부의 막무가내식 재선정 요구로 공주대에선 15개월째, 한국방송통신대는 13개월째, 경북대는 10개월째 총장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체육대의 경우 2년간 네차례나 ‘퇴짜’를 놓더니 결국 다섯번째 후보자로 친박계 정치인이 뽑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총장으로 임용했다. 선진화는커녕 퇴행에 가깝다.

물론 직선제가 지고지선은 아니다. 파벌 형성과 논공행상 등의 부작용이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무기로 윽박지를 일은 아니다. 총장을 직선으로 뽑을지, 간선으로 뽑을지, 직선제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대학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도록 해야 한다. 그게 대학의 자치역량과 자정능력을 키우는 길이기도 하다.

이종규 사회2부장
이종규 사회2부장
거점국립대학 교수회 연합회는 최근 ‘투쟁 결의문’에서 “교육부의 불법적·비상식적 압박에 국립대들은 굴종의 세월을 보내왔다”고 한탄했다. 지금 ‘선진화’가 필요한 곳은 교육부가 아닐까 싶다.

이종규 사회2부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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