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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과거로 돌아가자는 초등 한자병기 / 박창식

등록 2015-08-18 18:31

교육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반영하려 하고 있다. 다음달에 이런 내용을 정식 공고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국민 언어생활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줄 일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비판 여론을 존중해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교육부는 한자교육이 인문사회 소양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한자를 가르쳐야 한자어를 이해하기 쉬워지고 어휘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은행이란 어휘는 그 자체로 뜻을 갖는 것이지 ‘銀’과 ‘行’을 한자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기의 주성분인 산소를 이해하는 데도 ‘酸素’(산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 자료(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요약)에서는 한자교육을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제시했다. 더 황당한 이야기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인성이 훌륭할까? ‘義’를 알아야 의로운 사람이고 ‘奉仕’를 알아야 봉사를 잘한단 말인가?

교육부는 국민의 68.5%가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국립국어원, 2010년)를 제시한다. 여론조사는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답변이 유도되기 쉬운 함정이 있다. 입시와 자녀교육에 대한 압박이 심한 학부모들은 교과 특성을 따지지 않고 묻지마 답변을 하기 쉬울 것이다.

한자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줄었다고 보는 게 오히려 옳을 것이다. 한국갤럽에서 2002년과 2014년 두 차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자를 모르면 생활하는 데 불편하냐?’는 질문에 불편하다는 응답이 2002년 70%에서 2014년 54%로 크게 줄었다. 또한 ‘한글과 한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글만 써야 한다는 응답이 2002년 33%에서 2014년 41%로 늘어났다. 중국어 수요가 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어로서의 수요이지 한자에 대한 게 아니다. 중국 한자와 일본 한자, 우리나라 한자가 서로 달라 범용성이 약하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해방 뒤 한자병기, 국한문혼용 등을 거쳐 1970년에 한글전용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이 반대하여 1972년부터 중고등학교에 한문 과목이 만들어지고 1975년부터 중고교 교과서에 한자병기가 실시되었다. 그런데 1988년 창간한 <한겨레>가 순한글 가로쓰기를 선도하자 10년에 걸쳐 모든 일간신문에서 거의 완벽하게 한자가 사라졌다. 이와 함께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한자가 거의 다 빠졌으며 지금은 대학교재에서도 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자 시대에는 한자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나타났다. 언어 능력의 격차는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가져오기 쉽다.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으며 국민 통합도 해친다. 한글 시대에 접어들어 한글세대의 문해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중3 학생들은 문해력 부문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류 확산도 한글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는 문화 융성의 흐름을 막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다. 정부의 다른 정책에서 과거 퇴행 움직임이 있다 하나 국민 문화생활의 기초인 언어까지 그렇게 해선 곤란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연산군이 대대적으로 억누른 적이 있다. 그 시대를 연상시키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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