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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아이들도 고독이 필요하다 / 고영직

등록 2015-08-07 18:36수정 2015-08-07 19:51

아이들도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은 그저 심심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고립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고독은 누가 시켜서 해야 하는 갖은 의무 따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고,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으로서 비어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나 홀로 고독할 줄 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마음의 태도를 갖게 된다. 고독할 줄 아는 힘을 의미하는 ‘고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 다른’이라는 말이 퍽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과 삶은 하루아침에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고독할 시간이 있는가. 아이들은 너무나 바쁘다. 비어 있는 시간이라곤 거의 없다는 점에서 타임푸어 계층이라고 보아야 옳다.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의 힘을 발휘하며 재인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 수준이다. ‘생명보다 돈!’이라는 우리 시대의 주술은 저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좀처럼 흔들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후속대책으로 국회가 내놓은 인성교육진흥법이 발효된 이후 사교육 시장의 풍속도를 보라.

아이들을 위한 숨구멍이 필요하다. 2013년 9월 처음 도입되어, 2016년 전면 시행을 앞둔 자유학기제는 작은 기대를 갖게 한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수업 운영을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개선하고, 진로탐색활동 등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이다. 2013년에 참여한 42개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반응을 보면 대체로 긍정적이다. 아이들이 꾹 다문 입을 열고 꽁꽁 여민 마음을 열어 수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자유학기제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1970년대 초반 전환기 휴식을 도입한 아일랜드는 제도가 정착하는 데 수십년이 흘러야 했다. ‘한 번에 한 아이씩’이라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교와 지역을 연계하고 연결한 미국 메트스쿨의 생산적 학습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메트스쿨의 초대 교장을 지낸 미국 교육자 엘리엇 워셔는 ‘넘나들며 배우기’(Leaving to Learn) 과정은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유학기제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 될 것인가. 6일 발표된 대통령 대국민담화를 보면, 국민들의 동의와 동참을 말하면서도 저 1970년대 ‘동원’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 정부 정책의지가 자유학기제 시행보다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 쪽에 더 쏠려 있는 사정과 무관할 수 없다. 기업이 요구하는 창의·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이 정책목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학기제가 일종의 심리적 유예기간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중1 학생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지역사회의 준비도 중요한데, 현실은 만만찮다. 과천의 두근두근방과후협동조합이 2002년에 설립한 방과후학교가 ‘집값 떨어진다’는 지역 주민들의 원성 때문에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씁쓸하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교육은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전직 교사인 어느 시인이 “아이들의 꿈에는 / 도무지 땀 흘리는 게 없다.”(최기종)라고 쓴 표현을 보라. 상품화, 시장화, 경쟁을 철저히 내면화한 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은 돌봄, 사랑, 그리고 연대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지역이 분리되고, 교육과 사회가 분리되며, 배움과 운동이 서로를 외면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는가. 그런 사회의 교육은 교육이라 쓰고 축산업이라 읽어야 마땅하다.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할 때, 필요한 것은 마을이지 쇼핑몰은 아닐 것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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