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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평범한 자들의 민주주의 / 김종철

등록 2015-07-30 18:41

현행 소선거구제 밑에서는 국민의 절대다수 혹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대표자가 없이, 사실상 정치적 시민권이 박탈된 노예적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비례대표제 확대에서 시작하는 게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미친놈들이 국회의원 늘리자고 하네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이 얼만지 아세요?” “얼만데요?” “1억5천이 넘어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거기다가 온갖 특혜를 누리고, 사무실에는 보좌관, 비서, 인턴 포함해서 9명이나 직원들 두고 있고요. 그 경비만도 연간 6억이나 듭니다. 세금 도둑놈들이에요. 국회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나라도 많다는데….”

모처럼 택시를 탔다가 다혈질의 운전사로부터 뜻밖의 ‘가르침’을 받고, 인터넷에서 확인을 해보니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받는 급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액수 자체는 우리보다 많은 나라들이 더러 있지만, 국민소득 대비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단연 최고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세비 외에 지급되는 각종 수당들도 참 가지가지이다. 그중 압권은 ‘간식비’라는 것이다. 의원들이 보좌진과 함께 밤새워 일할 때 간식이 필요하다면 자기들 주머니를 털어 사먹을 일이지, 왜 공금을 써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의원의 고액 샐러리에 관한 시민들의 불만은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이 나라의 국가운영과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불신이 깊어지면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오늘날의 정치가 무력해진 원인을 제도적·구조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치가들의 인간적인 자질과 능력, 한계에 쉽게 반응하고 그것을 근거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우 불합리한 편견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정치란 보통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맡아서 하는 ‘전문적 활동’이라는 편견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에 웬일인지 자주 등장하는 임진왜란 당시의 국왕, 즉 선조의 경우를 보자. 선조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자기의 신변안전에 몰두하여 ‘왕답지’ 못한 용렬한 행태를 되풀이해서 드러낸다. 이런 장면을 보는 오늘의 한국인들의 입에서는 절로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순신이 터무니없는 죄명으로 삭탈관직과 모진 국문(鞠問)을 당한 끝에 겨우 목숨을 건져 ‘백의종군’에 나서게 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선조라는 왕도 왜란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런 천치 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즉, 그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왜군들에게 목숨을 잃을까봐 백성을 버리고 황급히 도망을 갔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공로가 큰 신하, 장수, 의병장들을 시기·질투하는 심리를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처형까지 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자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단 왕조시대뿐만 아니다. 지금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는 국가권력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적반하장 격의 인권유린 혹은 폭거 앞에서 가슴을 치고 통탄하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지도자’를 원망하고 정치가들을 비난하지만, 그래 봤자 소득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지도자, 정치가들의 ‘사람됨’이라는 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어리석은 짓이 정치지도자들의 사람됨에 기대를 거는 일이다. 또 냉정히 생각할 때, 정말로 사심 없고 덕망 있고 유능한 지도자, 위대한 정치가라는 게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인 이상 우리 모두는 거의 예외 없이 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정념과 욕망에 갇혀 살고 있게 마련이다. 철저히 사심 없는 현자 혹은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국가라는 게 성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실제 현실에서 위대한 지도자란 흔히 독재자, 폭군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명확히 이해하고 있던 공동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이기심 없는 특출한 위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인물은 시간이 지나면 폭군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고대 아테네에 ‘도편추방’이라는 특이한 제도가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잠재적으로 독재자가 될 소질이 있어 보이는 ‘비범한’ 인물들은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되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그다지 고상한 존재가 아니고, 알고 보면 모두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잠시 ‘연기’를 하다가 사라지는 어릿광대, ‘희극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에 고대 아테네인들의 깊은 지혜가 있었다(19세기 전반 왕정복고기의 프랑스 사회의 세속적 인심과 물정을 극명하게 묘사한 자신의 소설들을 모두 <인간희극>이라는 타이틀로 묶었던 발자크도 따져보면 이 전통 속에 서 있던 리얼리스트였다). 그리고 그 지혜를 통해서 그들은 이 평범한 속물적 인간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치시스템, 즉 직접민주주의를 만들고 실천했다. 아테네인들에게 민주주의란 보통사람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모아서 자신들을 다스리는 시스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대의민주주의가 대세인 오늘날 그리스식 민주주의는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원리와 본질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언제나 ‘아테네민주주의’라는 원점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파탄지경에 이른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즉, ‘인민’이 직접 자치를 하는 대신에 대표자들을 뽑아 정기적으로 선거를 통해 그들의 업적과 과오를 심판한다는 게 대의민주주의 원리라고 한다면, 그 원리는 지금 완전히 마비 상태이다. 오늘날 선거는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임을 묻는 기제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가 계급’이라는 새로운 특권계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합리화하는 형식적 절차로 타락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가 이토록 타락한 데에는 소선거구제 단순다수 득표로 대표자를 당선시키는 선거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 중 절대다수의 표는 버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국민 절대다수의 입장이나 의견은 국가운영에 반영되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상이 굳어지게 마련이다.

한국의 현행 소선거구제 중심 선거제를 비판하는 이들은 주로 뿌리 깊은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해서 이 제도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 밑에서는 국민의 절대다수 혹은 적어도 절반 이상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대표자가 없이, 사실상 정치적 시민권이 박탈된 노예적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운영 과정에서 소수자들을 소외시켜서도 안 되는 게 민주주의의 근본원리인데도,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는 사회 구성원 다수까지 철저히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이러고서는 선출된 국가권력일지라도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고, 정치와 사회가 절대로 안정을 누릴 수도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현재로서는 비례대표제의 확대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특권과 고액 연봉에 대한 보통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을 고려할 때,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되 동시에 국회의원의 특권과 급여를 축소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잘난 자들’의 전유물로 남아 있는 한, 우리가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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