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절을 하기 시작한 건 단군조선 때부터라고 고려 후기에 편찬된 <단군세기>엔 적혀 있다. 기원전 424년 제사를 지내는데 세 번 절하고 여섯 번 허리를 굽히는 ‘삼육대례’(三六大禮)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엔 궁중에서 왕에게 예를 표할 때 절을 했다. 왕의 측면에서 큰절을 한 번 하고 고두배를 세 번 했다고 한다. 큰절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눈썹까지 들어올려 하는 절이고, 고두배는 손을 풀고 머리를 바닥에 대는 절이다. 왕에게 큰절을 하는 예법은 고종 때인 1883년 9월18일 명성황후의 수양동생 민영익 일행이 미국의 외교사절 파견에 감사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그대로 재현된다.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은 뉴욕 피프스 애비뉴 호텔 연회장에서 민영익을 정사로 한 조선 사절단(‘보빙사’라 불렀다) 일행을 접견했다. 민영익과 부사 홍영식은 접견실에 들어서기 전에 한 번, 그리고 대통령 측면에서 큰절을 다시 한 번 한다. 고종의 친서를 아서 대통령에게 전달할 때엔 서로 악수와 목례를 했다. 민영익 일행이 미국 대통령에게 큰절을 하는 삽화는 뉴욕의 인기 주간지였던 <프랭크 레슬리스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페이퍼> 표지에 실렸다.
이 삽화를 두고 ‘조선 사절단의 난데없는 큰절에 아서 대통령이 당황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당시 정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조선 사절단 통역을 맡은 로웰은 현지 기자들에게 ‘이 예식은 자기 나라 국왕이나 독립국가 수장에게만 올리는 최고의 경의 표시’라고 설명했고 뉴욕 신문들도 그렇게 보도했다.(개인블로그 dylanzhai.egloos.com)
그때 민영익의 나이는 약관 스물셋이었다. 낯선 서양 대국의 대통령에게 어떤 예를 갖춰야 할지 그는 밤새 고민했을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전쟁 참전군인과 초대 미8군사령관 묘소 앞에서 큰절을 올린 게 화제다. 132년 전의 민영익만큼은 아니더라도, 김 대표가 어떤 고민을 했을지 궁금하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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