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통령에겐 전용기가 두 대 있다. 2010년 대한항공에서 장기 임차한 보잉 747-400기와 1985년 도입한 보잉 737기다. 공군이 관리하기 때문에 각각 공군 1호기와 2호기라고 부른다. 대형 여객기인 보잉 747을 임차하기 전까지는 보잉 737이 공군 1호기(에어포스 원)였다. 40인승인 보잉 737은 운항거리가 짧아 역대 대통령들이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할 때만 사용했다. 미국·유럽 등지를 갈 때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전세기를 이용했는데 하루 임차료가 1억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아예 보잉 747기를 장기 임차해 공군 1호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 뒤 공군 2호기는 대통령이 아주 드물게 제주도 방문 등에 이용한다. 가끔 국무총리가 타기도 한다. 2012년 김황식 국무총리는 라오스에서 열린 아셈 회의에 공군 2호기를 타고 참석했다. 십수년 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에, 그때는 ‘공군 1호기’였던 2호기를 탑승한 적이 있다. 규모가 작고 내부 치장이 소박해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서 보던 미국 대통령의 에어포스 원과는 너무 달랐다. 좌석 등받이에 새겨진 봉황 무늬만이 대통령 전용기임을 짐작하게 했다.
이제는 뒷전에 물러앉은, 30년이나 된 공군 2호기를 굳이 장황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8월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항공편으로 평양을 방문한다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공군 2호기를 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다. 동교동 쪽은 애초 육로 방북을 염두에 뒀지만 북한에서 먼저 항공편으로 방북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서해 직항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이 갔던 바로 그 길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최경환 대변인은 “북한에서 먼저 이 여사의 건강을 위해 항공편 방북을 제안하면서 자기들이 비행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이 제공하는 항공기를 이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희호 이사장 쪽은 3박4일간 30~40인승 규모의 민항기를 빌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임차료를 줄이려 저가항공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통일부는 동교동에서 요청하면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먼저 나서서 도와줄 기색은 없다. 하지만 이 이사장 처지에선 자신의 방북에 국민 세금을 쓰자고 말할 수가 없다. 공군 2호기를 내주면 이런 딜레마가 한꺼번에 해결된다. 더욱 중요한 건, 이 이사장의 공군 2호기 방북이 북한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이사장의 방북을 ‘개인 차원이며 특사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되는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이사장 방북이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되길 내심 기대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이사장의 공군 2호기 방북은 북한 예상을 뛰어넘는 것일뿐더러,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신호를 북한 지도부에 줄 것이다. 친서를 전달하진 않더라도 ‘특사인 듯, 특사 아닌, 특사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통령 전용기를 전직 대통령 부인에게, 그것도 평양을 방문하는데 왜 내주느냐는 보수층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전용기는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장례식에 갈 때 에어포스 원의 옆자리에 앉힌 이는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종종 야당 상원의원을 에어포스 원에 태우고 함께 기내식을 먹으며 설득한다. 그게 소통이고 정치다. 전용기를 활용한 박 대통령의 정치력을 한번 기대해보자.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박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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