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나 재해 등은 종종 ‘이슈의 블랙홀’이 되곤 한다. 당연히 덕을 보는 이들도 생긴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수혜자는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아닐까 싶다. 평소 같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법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검찰 소환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데 메르스 소용돌이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이 있으니, 바로 홍준표 경남지사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폐지, 성완종 리스트에 이어 이번에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가 2013년 저지른 일 때문이다.
경남에선 메르스가 진정세로 돌아선 지금까지도 음압병상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주민투표 운동본부’는 홍 지사가 강제 폐업시킨 진주의료원에 음압병상 4곳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남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맞서고 있다. 음압병상은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시설이다. 만일 운동본부 주장이 맞다면, 홍 지사는 감염병 대처에 필수적인 시설을 섣불리 없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경남도의 민감한 반응은 불문가지다. 경남도는 공동 현장검증 요구도 거부한 채 운동본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진실은 검찰과 법원에서 밝혀지겠지만, 음압병상 존재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격리병실을 갖추고 유사시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공사용 펜스가 둘러쳐진 진주의료원 건물은 의료 재난 상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진주의료원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거점병원 구실을 톡톡히 해낸 325병상 규모의 공공의료기관이었다. 민간병원들이 기피하는 환자들을 받아 신종플루와 사투를 벌였다. 당시 진주의료원에서 진료한 환자만 1만명이 넘는다. 이번에 경남지역에선 메르스 피해가 덜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서울·경기지역처럼 환자가 속출했다면 아찔한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었다.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원한 이유는 적자와 빚이다. 하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은 진주의료원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병원이 안고 있는 문제다. 진주의료원 폐원 직후 국회가 꾸린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진주의료원을 포함한 34개 지방의료원의 2012년 평균 당기순손실은 25억원, 누적 부채는 157억원이었다. 홍 지사의 잣대를 들이대면 살아남을 곳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홍 지사를 뺀 어떤 단체장도 지방의료원의 문을 강제로 닫게 하진 않았다.
더욱이 공공병원은 그 성격상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예방·응급 등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나 취약계층 진료와 같은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감염병에 대비하려면 평소에는 돈 낭비로 여겨질 수 있는 시설도 유지해야 한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병원은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요컨대 “공공의료를 하다 생긴 ‘착한 적자’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박근혜 대통령, 2013년 7월 지역발전위원회 회의에서)
또 우리나라는 수익성을 잣대로 멀쩡한 공공병원을 없애기에는 공공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병상 비중(2013년 기준)이 9.5%로, ‘의료 상업화 선진국’인 미국(24.5%)보다 훨씬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75.1%, 영국은 100%나 된다.
그런데도 홍 지사는 요지부동이다. 3일에는 진주의료원을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리모델링하는 공사의 기공식을 연다고 한다.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기어이 ‘대못’을 박을 모양이다. 박 대통령의 ‘착한 적자론’이 공허한 이유다.
이종규 사회2부장 jklee@hani.co.kr
이종규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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