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5일 대통령이 국립의료원을 방문했다.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 17일째,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나선 첫 현장방문이다. 방호복을 완벽히 챙겨 입은 간호사 앞에 선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의아했다. 격려가 목적이라면 방호복 벗은 간호사들 등 두드려 주면 되는데, 옷 갈아입을 틈도 없었던 건지…. ‘그렇다면 감염 위험은? 경호실이 체크했을 텐데, 마스크도 하지 않은 저 상황은 뭐지?’
며칠 후 텔레비전을 보니 방호복 간호사들은 유리문 안쪽 병실이 아닌 왼쪽 기계실에서 상관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지금이야’라는 지시를 하는 듯하자, 단역배우가 무대 위로 나가듯 불쑥 문을 열고 대통령 앞에 등장했다. 두 간호사는 방호복 입고서 문 뒤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뒤늦게 박 대통령이 나섰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건지, 목적은 뭔지 의아하다. 6월1일 수석비서관회의, 메르스 대책 일성 “유언비어 단속하라”, 5일 국립의료원 방문 “메르스는 사스와 다르다”(노무현 정부와의 비교에 항변), 9일 국무회의 “지자체 독자적 대응 혼란 준다”(박원순 서울시장 비판).
미국 방문(애초 6월14~18일) 대신 한 것이 동대문시장 방문 “상인들, 대통령 환영”(14일), 초등학교 방문 “메르스는 중동 독감, 올 수도 있고”(16일), 삼성서울병원장 질타(17일) 등이다. <조선일보>의 19일 사설 제목이 “청와대만은 삼성서울병원 질책할 자격 없다”였다. <동아일보>는 18일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보여주기식 행보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겨레> 사설이 아니다.
사람들이 똑똑해졌다. 청와대 실수는 늘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메르스 현장방문도 선거운동 하듯 한다. 현장 다니는 게 ‘메르스 환자’ 걱정보단 ‘메르스 정국’ 걱정으로 비치는 걸 어찌할 건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결정도 최대한 미뤄 메르스 국면 봐가며 할 것이란 보도를 접하면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삼성서울병원장을 청주까지 불러 ‘질타’한다 해서 환호하는 이는 이제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은 사과를 받을 게 아니라 해야 했고, 병원 가서 브리핑 받을 게 아니라 국민들께 브리핑 해야 했다. 그러나 ‘사과’는 이 정도(21일 현재 사망 25명) 사안에선 하면 안 된다 했을 것이고, 대국민 브리핑은 할 능력이 안 되는 걸 비서들이 차마 말은 못하지만, 다 안다. 그러니 늘 우린 박 대통령 대국민 메시지를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를 거쳐서 듣는다. 국민들이 대통령 부하인가?
왜 이토록 무능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질까? 남 밑에 있어본 적 없고, 남처럼 살아본 적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야 그렇다 하더라도 1998년 정치를 시작할 땐 대변인도 하고, 초선들 맡는 소소한 당직도 맡으며 윗사람 눈치도 보고 그렇게 성장해야 했다. 그런데 첫 보직이 당 부총재였다. 박 대통령은 평생 남에게 보고해본 적이 없다. “팔로어(follower) 경험이 없다는 건 보스로서 결격 사유가 된다.”(신현만, <보스가 된다는 것> 중)
박 대통령은 또박또박 말하는데도 왜 말실수가 잦을까?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유디티(UDT·특수전전단) 대원’을 ‘디디티(DDT·살충제) 대원’이라 하질 않나. 평소 대화를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마디 할 때마다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야당 대표 시절 바지 입으면 ‘전투복’이라 치켜세웠고,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 문장도 안 되는 말 한마디에 극찬했다. 그러니 이제 와 발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천수답 정부다. 비가 와야 메르스도 해결되고, 가뭄도 해결되는. 그저 이 사태가 어서 지나가기만 바라는. 국민들 심정도 그렇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박정희 신화’의 종식이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권태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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