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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시민의식의 발전과 동물보호 운동 / 박창식

등록 2015-06-16 18:47

나를 포함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이 아플 때 정말 답답하다. 몸이 축 늘어져도 도무지 말을 못하니까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쩔쩔매기 일쑤다. 동물병원에 데려간다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배려하면서 진료하는 건지, 과잉진료를 하는 건 아닌지, 건강보험도 안 되고 진료비는 왜 이리 비싼 건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6월4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2층 주택 건물에다 ‘우리동물병원생명협동조합’을 열었다. 협동조합 형태로 만든 최초의 동물병원으로, 사람 조합원 960명과 이들이 키우는 ‘동물 조합원’ 1700마리가 주인이라고 했다. 사람과 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한다는 뜻을 조합 구성 방식에 반영했다.

이들은 수의사 3명을 고용하고 조합원들이 모여 거품이 없는 적정 진료비를 책정했다고 한다. 조합원들이 집을 비울 때 반려동물을 서로 맡아주는 품앗이를 하고, 간식 만들기 활동도 함께 하겠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애태우던 문제를 제대로 잡아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만든 셈이다. 집만 가까우면 당장 가입하고 싶을 정도다.

협동조합은 사업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를 충족하려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체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공유경제의 유력한 형태로 다양한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시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동물병원을 만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과 동물보호 운동이 또 한 걸음 나아갔다고 평가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동물보호 운동이라고 하면 그린피스 회원들의 고래잡이 반대 선상 시위나, 가수 레이디 가가가 모피 반대를 외치며 생고기로 만든 무대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동물보호 운동의 철학과 전통이 서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지금도 서유럽에서 운동의 세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동물보호 운동이 눈부시게 도약하고 있다. 가수 이효리씨가 후원하여 더욱 유명해진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5층 독자 건물을 두고, 입양카페와 동물병원, 동물전문 도서관, 사무국 등을 운영하고 있다. 카라는 매달 1억6천만원 가까운 후원금을 소액 자동이체 후원자 위주로 모은다고 한다. 상근 인력이 수의사 2명을 포함해 20여명인데, 시민단체가 이 정도 인건비를 감당한다는 것도 대단하다.

한 시민운동가한테 들어보니 요즘 후원금 모집에 가장 인기있는 분야가 어린이 돕기이며, 동물보호가 당당히 2위라고 한다. 전통적인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권력 감시 운동은 후원금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했다. 후원금이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시민단체 활동의 지형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동물보호 운동이 뜨는 것은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나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은 이성이 없으므로 권리가 없고 오직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18세기 계몽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자연의 일부인 만큼 사람은 동물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파했으며, 동물복지 운동의 창시자인 헨리 솔트는 동물한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잔인함을 용납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근대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동물을 배려하는 것이 곧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사상으로 발전해온 것을 봐도 동물보호 운동의 의미는 자못 깊다.

박창식 논설위원
박창식 논설위원
사람 중심의 공공의료 체계를 무시하고 수익성과 효율 위주로 달린 것이 메르스 창궐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 사회가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추구할 때 사람이 무시당하는 일도 확 줄어들 것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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