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은 한-일 수교 50돌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3년 반 가까이 정상회담도 하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나쁘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국 관계가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악화의 원인을 박근혜 대통령의 ‘고자질 외교’와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퇴행적 사고’에 돌리는 의견도 꽤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그 뒤 잇따라 나온 ‘천황 사과’ 및 ‘일본의 국제 위상 저하’ 발언에서 찾는 이도 있다. 외교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크다는 점에서 이런 의견들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이들 지도자가 없었으면 수교 50년을 맞는 한-일 관계는 좋았을까를 생각하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지도자 요인’이 한-일 관계의 악화를 촉진하거나 초래한 한 원인일 수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50년 동안 한-일 관계를 규정해온 틀, 즉 1965년의 한일협정 체제가 구조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탓이 클 것이다. 소련과 중국, 북한에 맞서는 국제적 반공냉전 체제를 구축하느라 ‘과거사 청산 없이 서둘러 봉합된’ 한일협정 체제는 1980년 이후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급속한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잠재된 채 억눌려 있던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현안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기폭제가 됐다. 수직적 양국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욕구도 분출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양국의 국력 차이가 한일협정 체결 당시 ‘30 대 1’에서 최근 ‘3 대 1’ 정도로 축소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일 관계 재조정의 불가피성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최근에는 여기에 중국의 급부상에 대처하는 두 나라의 전략적 시각 차이까지 덧붙여졌다. 한국은 대북정책의 협조와 무역 비중에 대한 고려, 동북아 평화 구축 차원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을 억제·봉쇄하는 데 선봉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일협정 체제가 구조적으로 위협받고 있고, 지도자들은 불화하고 있으며, 주변 정세에 대해 미세한 전략적 이견이 존재한다고 해서 한-일 관계를 지금 흘러가는 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몇 년간 중단되었던 재무장관, 통상장관, 국방장관 간의 양자회담이 최근 잇따라 재개되고,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일을 기해 윤병세 외교장관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것 등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치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로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때문이건 아니건 그간 중단해왔던 일본과의 고위급 교류를 이제 재개하는 이유를 투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얼렁뚱땅 중요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얼마 전에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기소를 문제 삼아 자유·민주주의·인권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단지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로 ‘격하’했다고 해, 이쪽에 큰 충격을 줬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건 그것은 그 나라의 자유지만, 정말 그런지는 다른 문제다.
참고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4년도와 2013년도의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두 해 모두 일본이 8.08점으로 20위(아시아 1위), 한국이 8.06점으로 21위(아시아 2위)를 기록했다. 오히려 2012년도에는 한국이 20위로 일본(23위)에 앞섰다. 2015년도 언론자유 지수에서도 두 나라는 난형난제다. 국경 없는 기자회 발표로는 한국이 60위, 일본이 61위지만, 프리덤하우스에서는 한국이 67위, 일본이 41위다.
누가 뭐래도 세계의 눈으로 보면 한·일 두 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앞선 나라다. 앞으로 한-일 50년의 미래도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트위터 @ohtak5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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