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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여혐, 여혐혐 / 문강형준

등록 2015-06-12 18:22수정 2015-08-04 01:14

혐오란 ‘나’라는 견고한 경계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동이다. 나의 안전을 해치고 위생 상태를 더럽힐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혐오의 정동은 사회로도 확장되어 작용한다. 사회의 법과 제도, 규범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존재와 행위, 사고방식 등에 대해서도 집단적인 혐오가 작동하는 것이다. 한국 같은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소수자, 여성,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혐오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넘어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이 된다.

혐오는 이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어떤 실체가 있어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기보다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 속에서 혐오의 대상이 구성된다는 말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메르스갤의 ‘여혐혐’(여성혐오에 대한 혐오)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여혐혐의 성지가 된 이곳의 시작은 사실 혐오와는 무관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홍콩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 여성 2명이 격리 치료를 거부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메르스갤은 (마치 기독교 우파가 메르스와 에이즈(AIDS)를 즉각적으로 연결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려 들었듯이) 된장녀와 메르스 바이러스를 연결하면서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어째서 혐오가 ‘격리 거부’가 아니라 ‘여성’을 향하느냐 하는 점이다. 격리 거부가 의사소통상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이내 ‘메르스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판이었던 셈이다. 여성혐오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성별위계와 성별권력의 문제는 언제나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정확하게 골라낸다.

하지만 여성혐오가 생산하는 효과가 이미지의 영역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두려워해야 할 문제다. 실제로 여성혐오 발화나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방식은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아는 척하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순진한 얼굴로 모르는 척하는 문화에 대해서 기록하면서(‘맨스플레인’ man+explain) 이것이 어떻게 실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구조와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여성이 자신의 말에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지 못하고, 사회 역시 여성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 즉 여성에게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의 폭력에 대한 증언은 대체로 ‘미친 여자의 착각’으로 폐기처분되어 버린다. 여성혐오가 판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매해 114명씩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고 6800명씩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다. 장동민의 여성혐오 발언에 대해 우리는 쉽게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농담은 기실 여성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그리고 드디어 메스르갤에서 여성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디씨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쏟아내던 온갖 여성혐오 발화들이 여성들의 것으로 전유되어 그대로 ‘남성혐오’ 발화들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남성혐오’ 발화에 대한 디씨와 남성들의 반응이다. 디씨에서는 ‘욕설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고 메르스갤 ‘여혐혐’ 게시물에 대한 대량 삭제가 이뤄졌다. 남성들의 여성혐오는 유희가 되지만, 여성들의 (패러디로서의) 남성혐오는 유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여성들의 반격에 주목해봐야 할 이유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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