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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딩씨 마을, 퍄오 마을 / 고영직

등록 2015-06-05 18:31수정 2015-08-04 01:14

중국 작가 옌롄커의 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은 중국판 ‘페스트’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딩씨 마을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마을이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사십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인구가 다 합쳐 팔백명이 안 되는 작은 마을인 딩씨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에이즈가 창궐했기 때문이다. 일회용 주삿바늘을 사용해 인민들이 하루에 두세번씩 피를 판 데서 비롯했다.

소설은 열두살에 에이즈로 죽은 소년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딩씨 마을에 엄습한 재난을 묘사하는 옌롄커의 침통한 붓질은 왜 이 작품을 중국판 판타지 리얼리즘(魔幻現實主義)의 진수라고 말하는지 생생히 입증한다. 타는 듯한 가뭄과 저물어가는 황혼녘 묘사가 압권이다.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들녘은 그 어떤 생명도 잉태하지 못하는 딩씨 마을의 상황을 강력히 은유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교육국장이 마을 주민들에게 소강(小康)으로 가는 황금빛 대로를 달려야 한다며 매혈을 재촉하는 장면에서 염병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촌장인 리싼런의 주도 아래 마을 곳곳에 채혈소가 설치되고, 딩씨 마을은 가장 모범적인 혈액공급 마을에 선정된다.

그러나 번영에 대한 딩씨 마을 사람들의 일장몽은 오래가지 못한다. 학교에 격리된 마을 주민들은 상부에서 신약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신약 따위는 끝내 오지 않는다. 상부의 지도자들이 사는 신시가지를 찾은 소년의 할아버지가 매혈로 재산을 모은 어느 간부의 금고에서 금산은해(金山銀海)의 치부를 확인하는 장면이 강렬하다. 그리고 그런 간부들처럼 대재앙의 참사를 활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며 피의 왕이 된 ‘딩후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딩후이는 폐허가 된 마을에서 능원(묘지)을 조성해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이 작품은 1980~1990년대 중국 허난성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한 중국 정부가 소강(샤오캉)사회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혈장(血漿)을 팔아도 된다고 한 방침에 따라 일어난 비극인 것이다. 옌롄커는 자신의 고향인 허난성에서 일어난 재난 상황을 12년간의 고투 끝에 이십만자에 달하는 분량으로 이 작품을 썼다. 옌롄커가 “내가 소모한 것은 체력이 아니라 생명이었다”고 술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출간 이후 작가는 모진 수모를 당한다. 이 소설을 광고하지도 말고, 일체의 보도와 논평을 금지했으며, 재쇄마저 금지했다. 국가의 명예에 손상을 입혔다는 이유 때문이다. 옌롄커가 쓴 다음 문장을 보라. “어떻게 상부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와서 살펴보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른바 혈장 경제의 허구성을 꼬집고, 국민을 버린 지배계급의 문제를 철저히 파헤친 작품인 것이다. 중국의 망명 지식인 류짜이푸는 “가난은 두려운 것이고, 가난을 벗어나려는 수단과 구호는 더욱더 끔찍하다”고 논평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중동발 메르스는 이제 은유가 아니다. 저 세월호 때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국가는 없었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첫 감염자 가족에게 ‘빽’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망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설득력을 얻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 그렇다면 ‘퍄오(朴) 마을’에 사는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할까. 어쩌면 그것은 지난해 여야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세월호 대책이랍시고 ‘수영교육 활성화 토론회’를 개최하려다 취소한 사건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 핏덩이 같은 노을이 지는 황량한 딩씨 마을에 마침내 생명의 단비가 내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생명의 단비는 소설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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