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을 아시는가. 두세 평 남짓한 벌집에 진짜 벌이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공(女工)들이 산다. 쪽방 혹은 닭장집이라고도 불리는 벌집의 필수 아이템은 석유곤로와 비키니옷장 그리고 가족사진이다. 특히 조립식 비키니옷장은 공간이 좁은 벌집에 꼭 필요한 가구라고 할 수 있다. 비키니옷장은 어쩌면 구로공단을 비롯해 벌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1인용 가구였으리라.
오래된 신문지를 벽지로 사용한 벌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퍽 오래된 일이다. 구로공단 50년을 기념해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가리봉오거리’전에는 벌집을 비롯해 노동과 생산 그리고 이주의 공간을 재현한 공간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년 전에 열린 ‘창신동’전을 잇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의 벌집은 철거 예정인 가리봉동 133-52번지 벌집주택단지에서 가져온 문짝들을 비롯해 생활가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1970년대 후반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 벌집에서 여공으로 산 작가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이라고 썼다.
그러나 벌집이 남루하다고 비웃지는 마시라. 벌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와 겸손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시골에서 상경해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어엿한 미싱사가 되어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효순이’들이었고, 또 누군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환멸과 유혹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회한과 고독의 눈물을 흘리며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벌집들에서 살고 있는 우리 시대 주거난민들이 있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통계청에 의뢰해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도 최저임금은 155만3390원으로 추산된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노동자가 한달간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비용이라고 한다. 이 숫자 앞에서 저 1970~1980년대 벌집에서 산 사람들의 삶과 꿈을 생각해보시라.
‘가리봉오거리’전은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구로공단의 탄생에서부터 이제는 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변신한 지(G)밸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다양한 자화상들이 연출되었다. 벌집뿐만 아니라 “라인은 돌아가야 한다”는 문구가 적힌 공장과 야학 풍경 그리고 나폴리다방 같은 문화공간 또한 재현해 놓았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은 구로3동성당과 산업선교회 같은 곳에서 진행된 야학 배움터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칠판과 탁자 그리고 서너 개의 책꽂이가 전부인 이러한 공간에는 얼마나 무수한 ‘사연들’이 있었을까. 구로공단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 가능했던 데에는 이런 배움의 공간에서 인간 대우를 받고자 노동법을 공부하고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한 ‘각성한 노동자’들을 빼놓고 말할 수 없으리라. 탁자 위에 놓인 <철학에세이>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을 보며 나는 문득 회고주의자가 된다.
그런데 전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재하는 공간이고 면면히 지속되는 우리들의 삶이다. 구로공단으로 상징되는 가리봉오거리는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함께 사는 삶터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터가 일터가 되고 놀터가 되어야 한다. 지밸리에 소재한 기륭전자 싸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락희럭키구로공단 같은 예술가 그룹이 진행한 봉봉(縫逢) 프로젝트라는 작명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봉봉이라는 말은 ‘꿰매고 만나다’라는 뜻이다. 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생각하는 손의 힘을 상상하고 실천하자는 의미일 터이다. 끝나지 않은 ‘시다’의 꿈은 계속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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