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죄와 벌’의 균형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뒤돌아보게 한다. 조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저질렀다는 허위사실 공표라는 죄와, 당선무효형이라는 벌의 간극이 너무나 아득히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이 경쟁자인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것에 국민 배심원들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고 하니 일단 죄는 인정됐다고 치자. 하지만 그 행위가 선거 결과를 원천무효로 돌릴 만큼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 사안은 애초 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를 내리는 선에서 끝난 문제였다. 처벌의 롤러코스터도 유분수지, ‘훈방’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겨졌던 죄목에 대해 뒤늦게 ‘사형 선고’라는 극형이 내려진 셈이다.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은 공직선거법 등에 따라 선거 과정에서의 위법행위로 당선무효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예외다. 대통령을 당선무효형의 심판대에 올려놓을 경우 나라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을 떠나 사실 관계만을 따져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죄도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국정원 댓글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이 대선 전에 한 “민주당이 가해자이고 국정원 직원이 피해자” 등의 발언은 조 교육감의 발언에 비해 과연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조 교육감의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이 사건 범행으로 고승덕 후보가 낙선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국정원 댓글 사건이 선거에 끼쳤을 파급력은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성완종 리스트’를 통해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핵심 책임자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마저 제기된 상태다. ‘선거자금 회계 부정’은 일반 선출직 공무원들은 곧바로 당선무효형을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다. 두 사람의 위법행위의 무게 차이를 지켜보면서 이런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국가와 서울, 국정 전반과 교육 행정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울시 교육은 당선자의 경미한 위법행위만으로 안정성이 흔들려도 괜찮을 만큼 하찮은 것인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런 주장이 나오기만 하면 ‘대선 불복’이라는 말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검찰이 조 교육감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기소를 강행한 것이야말로 ‘선거 불복’ 혐의가 짙다. 선거 과정의 중대한 흠결로 정통성을 의심받는 대통령의 휘하에 있는 검찰이,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육감의 당선 무효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역설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법의 지배니, 민주적 선거 과정의 정당성이니 하는 원론적 개념들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조 교육감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일부 보수언론들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 등을 들고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거나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교육감 선거 과정의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굳이 제도 개혁을 하기로 치면 대통령 선거 체제를 손보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대선 과정에서 음성적인 불법 정치자금 모금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이 현실인데도 대통령 후보자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는 일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낡은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선언은 적반하장의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마주한 문제는 박 대통령의 정통성의 위기 자체보다는 정통성의 위기를 대처하는 대통령의 방식에 있다. 정치학 원론에서는 정당성 위기를 해소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재건(re-establish)과 강제(coerce)를 든다. 최소한 대통령이 국민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것이 민의에 기초한 정당성 복원의 첫걸음인데도 박 대통령은 우격다짐으로 정당성을 강제하려고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실망스러운 태도를 지켜보면서 많은 유권자들은 마음속 법정에서 대통령에 대해 ‘당선무효’ 평결을 내리고 있다.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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