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7월9일, 이틀 전 마흔두살 생일을 맞은 한 흑인 투수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다. 재키 로빈슨이 미국프로야구의 흑백 장벽을 허물어뜨린 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불혹을 넘긴 나이로 메이저리그 최고령 신인 투수가 된 그의 구속은 시속 145㎞가 넘었다. 간혹 홈플레이트 앞에서 살짝 꺾이는 체인지업 성향의 공을 던져 타자들의 혼을 빼놓기도 했다. 미국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는 새철 페이지(본명 리로이 로버트 페이지) 얘기다.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 니그로리그 등에서 2000승을 거두며 300번의 완봉승, 55차례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흑인 차별로 마흔두살에야 메이저리그 첫 투구를 한 페이지는 쉰아홉살에 마지막 투구를 했다. 1953년 은퇴를 했다가 1965년 9월26일, 바뀐 메이저리그 선수 연금법에 모자란 3이닝을 채우기 위해 잠깐 돌아왔다.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유니폼을 입고 보스턴 레드삭스 타선을 상대로 한 성적은 3이닝 1피안타 무실점. 그는 이닝 종료 때마다 불펜에 임시 마련된 흔들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다음 투구 이닝을 기다리는 쇼맨십까지 보여줬다. 연금법이 다시 바뀌면서 1968년에도 선수 등록을 강행했으나 고령의 나이를 우려한 주변의 만류로 마운드에는 서지 못했다. 평소 나이 관련 질문을 제일 싫어했던 페이지는 “누군가 당신에게 나이를 물었을 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바라는 나이를 말해라”라며 “나는 마흔네살인 적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마흔네살일 것”이라고 얘기하고는 했다.
2015 시즌 프로야구에는 진갑용, 이승엽(삼성), 손민한, 이호준(이상 NC), 박진만(SK) 등 한국 나이로 마흔살 이상의 선수 13명이 활약하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선수는 늙어서 야구를 관두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관뒀기 때문에 늙는 것”이라는 페이지의 말이 생각난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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