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이자 정치사상가인 존 밀턴이 1644년에 소책자로 써낸 <아레오파지티카>는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뛰어난 고전이다. 밀턴은 이 책에서 오늘날 표현의 자유의 원리로 널리 사용되는 ‘사상의 자유 공개시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다양한 사상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자유롭게 경쟁하다 보면 그중 가장 뛰어난 사상이 힘을 얻게 되고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게 핵심이다. 아레오파지티카는 그리스 시대 고등법정인 아레오파고스에 론(論)이란 의미의 ‘카’(ca)를 덧붙인 말이다.
밀턴이 소책자까지 작성하여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은 정치적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1642년 6월에 밀턴이 메리 파월과 결혼했는데, 아내가 두 달 만에 친정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단순한 가정불화가 아니라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다툼에 따른 사상 차이가 겹쳤다. 밀턴은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게 되자, 1643년 이혼론을 출간한다. 간통이 아니더라도 부부간의 기질과 사상이 맞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영국 사회는 교회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이혼을 금지한 까닭에 매우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이혼론은 출판허가법에 의해 2쇄 재판의 출판이 금지되었다. 분노한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를 작성했는데, 이것조차도 출판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유인물이었다. 밀턴은 3년 뒤 메리와 화해하고 재결합하여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낳았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시의 견제를 무릅쓰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다양한 영화를 스크린에 올려 시민들이 자유로이 감상하고 비평하도록 하는 게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옳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금을 40%나 삭감당했다. 이혼에 관한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야 했던 밀턴의 시대와, 오늘날 부산영화제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듯하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