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엔 긴 연휴가 한해에 두차례 있다. 1월1일부터 1월5일까지는 신년 공휴일이고, 1월7은 러시아정교 크리스마스 공휴일이라, 사실상 일주일 동안 연휴가 이어진다. 5월1일 노동절(메이데이)부터 5월9일 전승기념일까지의 아흐레 동안도 최근 들어 연속으로 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련이 나치 독일한테 항복을 받아낸 세계 2차대전 전승기념일이 올해로 70돌을 맞는다. 전승기념일엔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비롯해 주요 도시들에서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소련은 4년간 이어진 2차대전에서 군인 750만명을 포함해 2500만명 안팎이 사망하는 등 어느 나라보다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전승기념일은 ‘위대한 조국전쟁’ 당시를 떠올리며 전몰자를 추도하고 러시아의 영광을 기리는 날인 것이다.
전승기념일은 역사적으로 부침을 겪었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부터는 무기 반입 없이 군인들의 행진만 간소하게 이뤄졌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는 ‘초강대국’이었던 2차대전 당시 소련의 향수를 자극하는 애국주의 강화가 이루어졌고, 이런 맥락에서 전승기념일도 성대하게 치렀다.
특히, 러시아는 2005년 60돌, 2010년 65돌 등 5년 단위로 ‘꺾어지는’ 전승 행사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외국 정상들을 초청했다. 200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또한 2008년 군사 퍼레이드부터는 붉은광장에 전술·전략 무기가 등장했다.
러시아는 이번 70돌 기념일에도 각국 정상들한테 초대장을 보냈지만 미국과 유럽, 한국 등 상당 국가의 지도자들은 불참한다. 러시아의 지난해 3월 크림반도 합병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한 흑해함대 병사들의 군사 퍼레이드 참가 소식이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지난해는 모스크바 행사가 러시아 단독으로 치러져, 흑해함대의 사열식 참가가 의전적으로 쟁점화되지 않았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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