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추문에 익숙한 유권자들 “야당도 받았겠지” 양비론과 냉소
성완종 사태의 프레임은 반부패가 아닌 위기관리능력의 ‘부재’
성완종 사태의 프레임은 반부패가 아닌 위기관리능력의 ‘부재’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박근혜 정부 최대의 정치 스캔들임에 틀림없다. 현 정부의 실세들이 두루 연루된데다 불법 대선자금 의혹도 일고 있어 정권의 도덕적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효과는 박 대통령 지지도 5%포인트 하락, 새누리당 지지도 2%포인트 하락 정도로 보인다. 정치권과 언론의 원색적 폭로와 경쟁에 비하면 막상 대중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이다. 당장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정국을 강타할 태풍처럼 보였으나 미풍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왜일까?
일단 여당의 노골적인 물타기 시도가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진 직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 인사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야당으로 수사 확대를 기정사실화했다. 또한 참여정부 시절 단행된 성완종의 특별사면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물타기 수법이 대중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대중 여론의 구조가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부패 추문이 발생할 때 대중들의 반응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라며 싸잡아 비판하거나 “돈 없이 정치할 수 있나”라는 양극단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즉, 정치권의 부패 이슈는 그 진원지가 어디든 정치권 전반, 지배 엘리트 전체로 향하지 여당과 보수세력만을 분리 조준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84%가 ‘성완종 리스트가 사실일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성완종 돈 야당도 받았을 것’이라는 여론도 82%에 이르는 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의 부패 이슈는 야당과 진보진영의 기대처럼 보수 여당의 치부를 드러내어 그들을 고립시키는 이슈로 작용하기 힘들다. 오히려 야당 인사가 조금이라도 연루되었음이 드러났을 때 도덕 면에서 상대적 우위가 있다고 여겨져온 야당과 진보진영에 더 크고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정치 자체, 정치인 전체를 싸잡아 부패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결국 ‘정치는 썩은 것’이라는 정치 혐오와 냉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 혐오와 불신이 기존 기득 정치구조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래서 성완종 리스트를 부패라는 프레임에 가두면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가는 야당은 무능하고 답답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대중 여론에 미치는 효과는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인 부패 문제가 그 성격과 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늘 불거지기 마련인 이슈라면, 이에 대한 정치권의 위기관리 대응이 중요하고 대중 여론도 이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잣대로 보면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차라리 초기에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인정과 사과를 했더라면 대중들도 덜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완구, 홍준표, 김기춘 모두 곧 들통날 거짓말을 연일 뱉어내고, 어설픈 회유 협박 시도로 오히려 자신들의 의혹이 사실에 가까움을 보여주었다. 온갖 의혹과 자질이 의심되는 총리를 애써 임명한 장본인이 이제는 총리의 사의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며 책임 회피성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무능’을 넘어 대통령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성완종 리스트 사태의 프레임은 반부패가 아니라 무능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당장 재보선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부임을 극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훨씬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hgy4215@hani.co.kr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이슈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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