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회동을 갖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한 풍경이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친박계 좌장이었다. 어느 저녁 자리 술이 얼큰한 김무성, 박근혜에게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삼성동 집 20억원쯤 갑니다. 팔고 신당동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했다. 점점 얼굴 일그러지던 박근혜, 버럭 했다. “제가 언제 돈 쓰라고 했어요?”(2013년 5월25일 <동아일보> 보도)
김무성은 박근혜에게 모멸감을 줬다. ‘삼성동 집’(대지 484.8㎡, 지하 1층, 지상 2층, 1990년 매입)은 은둔의 시절을 보낸 곳이며 부모님 유품을 모신 곳으로,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다. 김무성은 무례했다. 왜 무례할 수 있었을까? 당시 경선에 들어간 숱한 돈, 직원 월급 등 캠프 운영비 상당 부분을 김무성이 자기 돈 퍼붓다시피 부담했다. 또 캠프에 발 들이민 의원들과 인사들이 성의껏 모으고 냈다. 박근혜는? 아마 한 푼도 안 냈을 것이다. 돈 얘기를 하면 화만 내니, 알아서 쓰고 보고는 않는다.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지. 무능 아니면 비겁이다.
10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진 뒤, 박 대통령이 보인 첫 반응은 이틀 뒤 “검찰이 성역 없이 대처하기 바란다”이다. 다음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더 이상 언급은 없을 것”이라 했다. 마치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물이 나한테 튈까봐 ‘킹스맨 방탄 우산’이라도 펴든 모양새다.
그러나 이후 몇 번이고 입장을 밝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15일 현안 점검회의), “이번 일을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뽑는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16일 순방 전 김무성 대표를 만나),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여러 적폐를 해결하면서… 사회개혁에 박차를 가하면서…”(21일 칠레 동포간담회)
위 말들은 <한겨레> 사설에 그대로 넣어도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말들이다. 현지에서 아침 느지막이 이완구 총리 사의표명 보고를 받고서 “안타깝다. 총리의 고뇌가 느껴진다”는 말은 한국시각 한밤중에 누구 들으라 하는 말인지. 어디에도 ‘책임, 사과’는 한 점 없다.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의 댓글 개입 논란 때도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했다. ‘성완종 리스트’대로 만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그 돈이 쓰였다 하더라도, 주어만 ‘국정원’에서 ‘성완종’으로 바꾸면 된다.
수사는 이완구·홍준표에서 시작할 것이다.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이완구는 본인 재보궐선거, 홍준표도 본인 당 대표 선거였다. 그러니 ‘성역’이 아니다. ‘성역’은 홍문종·서병수·유정복이다. 2012년 대선자금과 연결된다. 그런데 검찰은 ‘성역’을 ‘야당’으로 생각하는 건가?
박 대통령은 아마 이완구 총리를 ‘마속’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제갈량이 마속을 읍참할 때, 스스로도 자신의 지위를 3단계 강등하며 병사들에게 사과했다. 유비는 죽기 전 제갈량에게 “마속은 절대 장군으로 쓸 인물이 아니다” 했다. 이 총리를 기용할 때,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했고, 이 사달이 났다. 박 대통령에게 제갈량의 염치를 바라는 건 무리인가?
김영삼 대통령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추진할 때, 김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자신과 가족의 재산부터 공개했다. 정략적이라도, 힘은 이럴 때 생긴다. 개혁은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2007년 박 대통령이 ‘삼성동 집’ 팔았더라면, 박근혜는 이명박에 앞서 대통령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런 선택 못한다. 그 비난 무릅쓰고 ‘문고리 3인방’ 지켜낸 그다. 박근혜는 ‘삼성동 집’과 평생 함께할 것이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