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난무하는 거짓말과 구름 위 화법…‘말’이 사라진 시대
한겨레는 ‘말의 진실성’ 추적 책무에 진력하기를
한겨레는 ‘말의 진실성’ 추적 책무에 진력하기를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는 역시 ‘거짓’으로 매듭지어졌다. ‘목숨을 걸고 던진 거짓말’도 헛일이었다. 시민들의 눈과 귀는 잇달아 그의 말이 거짓임을 증언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디지털 기록들도 그에게 더는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그는 싸늘한 국민 여론 앞에 무릎 꿇고 끝내 총리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민은 한없이 우울할 따름이다. 한 편의 저질 코미디를 본 느낌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고성능 포탄임에 틀림없다. 박근혜 정권 탄생 전후의 핵심 인사 8인에 대한 금품 수수 비리가 담겨 있는 터다. 그 비리는 박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폭발력을 지녔다. 비리 혐의자들이 완강하게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하고 나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진실은 곧 드러날 것으로 믿는다. ‘메모’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마지막 육성’도 공개된 마당이다. ‘금품 수수 정황’이 거의 드러난 경우도 두세 명에 이른다.
문제는 당사자들의 ‘거짓말 수준’이다. 거짓말에도 품격에 있다면, 리스트 관련자들의 ‘거짓말 품격’은 옹졸하다. ‘돈 받은 일 없다. 황당무계한 말이다. 일면식도 없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거의 만난 일이 없다.’ 8인이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명은 비겁하다.
‘망자의 모함’이라는 당사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돈을 주고받을 만큼 가깝거나 접촉이 거의 없는 사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성완종과 정권 실세들의 진실게임을 바라보는 국민은 성 전 회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실세들은 무엇이 겁나 인간적인 관계를 애써 부인하는가. 이는 오히려 혐의를 뒷받침하는 ‘간접증거’로 받아들임 직하다.
바야흐로 거짓이 춤추는 시대, 말이 사라진 시대다. 말은 소통의 수단으로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진심을 전해야 할 언어가 품격을 해치면서 그 흐름은 가속화하고 있다. 말이 생명력을 잃은 사회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말도 쓸모없다.
이 비극적인 문화적 흐름 앞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구름 위 어법’은 이름 높다. 그 어법의 두 가지 특성은 대중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무책임’과 ‘말로만’(진정성은 없이)이 그것이다. ‘제3자의 시선과 교과서적인 담백한 처방’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때도 박근혜 어법의 두 가지 특성은 도드라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남미 순방길에 오르기 전 말했다. “이번 일을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는 정치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 정권 실세들이 줄줄이 연루된 데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는 “아직도 사고 해역에는 9명의 실종자가 있고 정부는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헌화나 분향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 못한다.
정치 개혁도, 세월호 참사의 상처도, 경제의 회생도 대통령의 솔선수범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정치 개혁은 대통령의 실천 의지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자신의 책임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빈약할 때 개혁의 동력은 기대할 수 없을 터. ‘성완종 리스트’ 내용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의 충격적인 정치 비리가 무엇이겠는가. 참사 1주기에 굳이 해외 순방길에 오른 저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 외교적 성과는 과연 무엇인가. 희생자 가족들은 가슴이 아프다.
성완종 리스트는 세 갈래 파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권의 위선적인 얼굴을 드러냈다. 사정 대상이 부패 척결을 외쳤으니 웃음거리 아닌가. 비리에 익숙한 정치인들의 뻔뻔함 뒤에 숨어 있는 ‘비겁성’도 충격적이다. 망자와 대한 예의와 신의가 평범한 수준을 한참 밑돌다니, 그들이 과연 사회지도층 인사들인가. 또 리스트는 검찰권의 탈선이 국민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권의 실세 그룹을 움직일 만큼 막강한 로비력을 지닌 인물이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평범한 시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박근혜 정권이 눈여겨볼 대목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곧 새 총리 후보자를 선보일 것이다. 그 인물은 대통령의 의지와 진심을 드러낼 것이다. 대통령은 과연 이번엔 누구를 내세울까. 대통령의 ‘노심초사’가 보인다. 괜히 트집 잡는 야당 국회의원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총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고려 사항도, 고민거리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이다. 답은 단순한 데 있다. 인재 풀을 과감히 넓히는 일이 그것이다. 지역과 철학에 얽매이지 말 일이다. 깨끗한 인물, 신선한 인물로 국민의 닫힌 가슴에 도전하라. 대통령의 백마디 다짐보다 단 한번의 멋진 총리 기용이 국민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까다로운 청문회 과정, 야권의 까탈을 탓하지 말라. 대통령이 마음을 열면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 어디 한둘인가.
언론도 사라진 말의 시대 복원에 나설 때임을 거듭 강조한다. 말은 진실과 정의, 소통의 수단이다. 말이 살아 있을 때, 상식도 염치도 작동되는 법이다. 정치 개혁도 말의 회생이라는 전제조건이 성립될 때만 가능하다. 사회 발전 에너지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풍토에서 꽃피지 않겠는가. 언론이란 한마디로 ‘국가나 사회를 주도하는 집단이 하는 말의 진실성을 추적하는 공기’다. <한겨레>에 부여된 책무이자, 강점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사족 한마디를 보탠다. 성완종 전 회장은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의 ‘빗나간 수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 수사는 이완구가 주도한 기획수사다. 나에게 적용된 혐의는 억지로 부풀려졌다.’ 그의 죽음을 부른 결정적 요인은 검찰 수사의 부당함에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고발한’ 검찰 수사 방향의 정당성, 적절성에 대해 면밀히 점검·추적하는 기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겨레> 지면에도.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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