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언론 보도는 3년 전 이명박 대통령 때의 기사에다 글자 몇 개만 고친 수준이었다. “한-콜롬비아 에프티에이(FTA) 타결에 따른 후속조처 추진”이 “에프티에이의 조속한 비준 촉구”로, “양국 간 인프라, 에너지, 석유화학, 광물자원, 환경 분야 등에서의 협력 증대”가 “인프라 프로젝트, 전자 상거래, 온라인 유통망 진출 협력”으로 바뀐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정도의 정상회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세월호 참사 1년을 맞는 날 그렇게 허겁지겁 나라를 떠났다는 말인가.
평이한 정상회담 결과도 그렇지만, 방문의 격식도 초라하다. 산토스 대통령이 2011년에 한국을 방문(국빈방문)하고 2012년에 한국 대통령이 답방(국빈방문)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콜롬비아 대통령이 먼저 방한할 차례이고, 한국 대통령이 가려면 국빈방문의 대접이라도 받아야 옳다. 그런데도 애걸하듯이 공식방문으로 격을 낮추면서까지 콜롬비아행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콜롬비아의 6·25 참전 용사들을 만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세월호 유족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주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나쁜 대통령’이다.
외국에 나가 화사한 패션을 뽐내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요즘처럼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과대포장된 해외순방 성과로 내치의 실패를 덮을 수는 없다. 사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곤경에 처한 박 대통령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자업자득, 인과응보처럼 적절한 용어도 없다. 한평생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지 않았다면, 아니 백 보를 양보해 ‘사정 대상 1호’를 부정부패 척결의 기수로 내세우는 코미디만 연출하지 않았어도 ‘피의자 국무총리’라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을 것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잇따른 말바꾸기와 ‘기억상실’을 앞세운 발뺌을 보면서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믿고 있을까. 아니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장탄식을 또다시 되뇌고 있을까.
박 대통령은 아마도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밑이 꺼지며 싱크홀에 빠져버린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가 단단하다고 여긴 것은 박 대통령의 착각일 뿐이었다. 지표면 아래에서는 검은돈의 지하수가 흐르고 곳곳에 균열과 침식,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덕성의 지층이 어긋나고 정직함이 빠져나간 빈 공간은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을 지탱하고 있던 권력의 기반은 무너졌다. 여권 내 친박계는 초토화되고, 친이계는 희희낙락 고소해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표 취임 뒤 한 차례도 따로 만난 적이 없던 김무성 대표를 급히 단독으로 만난 것은 박 대통령의 옹색한 처지를 웅변한다. 권력 관리를 위해 친위세력을 전면에 포진시켰던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권력 기반 붕괴의 지름길이 된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면 싱크홀에 빠져버린 대통령이 살아날 길은 있을까. 물론 없지는 않다. 우선 고쳐야 할 것은 ‘청와대 사투리’다. 범법 행위의 꼬리를 숨기지 못해 괴로워하고 총리직을 내놓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한 모습에 ‘고뇌’라는 엉뚱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식의 말투 말이다. 대통령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실은 국정원 대선 개입과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양대 불법 행위’의 토대 위에 쌓은 모래성임을 인정할 용기가 없으면, 정치개혁이니 하는 말도 일찌감치 접는 게 낫다. ‘성완종 리스트 인사 8명 중 일부만 사법처리하고 야당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꼼수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던 권력의 축은 어차피 무너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발상의 전환을 할 때다. 사라진 친박의 권력 기반 대신 ‘대연정’에 버금가는 광폭 행보로 새로운 권력 기반을 창출하는 일 말이다. 당장 차기 총리 후보자 지명부터 야당과 상의하는 것은 어떤가.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싱크홀 대통령’이 생환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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