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가령 축제, 공연, 사회간접자본 건설같이 공동체를 위해 큰돈이 필요할 때 아테네는 부자가 공적 기부를 하도록 했다. 전쟁 때 3단 노선을 건조하기 위해 필요한 돈도 부자한테 요구했다. 부자들은 기꺼이 의무를 짊어졌다. 자신이 유력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기회로 여겼다.
때로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나보다 더 부자가 있는데 왜 내가 부담을 짊어져야 하느냐고. 그때를 위해 ‘안티도시스’라고 하는 재산교환 소송 제도를 두었다. 가령 아테네 해군이 군함이 필요해서 갑한테 “당신이 가장 부자니까 비용을 내시오”라고 요구했다. 갑이 받아들이면 문제없다. 하지만 갑은 “저기 있는 을이 더 부자다”라고 항의할 수 있었다. 을이 받아들이면 을이 군함 건조 비용을 내면 된다. 하지만 을이 거부하면 소송이 발생한다. “무슨 말입니까? 나는 갑보다 부자가 아닙니다.” 양쪽은 자기 재산이 상대방보다 적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툰다. 여기서 이긴 사람이 자기 재산을 상대방에게 모두 주고 상대 재산을 통째로 가져온다. 그리고 공적 기부를 맡게 된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며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환골탈태를 겨냥해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 셈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상당수가 “개인 생각을 늘어놓으면 곤란하다”며 유 대표를 원색적으로 공격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박약한 듯하다. 부자가 공동체를 위한 재정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고, 안전장치로 재산교환 소송 제도까지 두었던 아테네 민주주의 정신을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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