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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이 땅의 장발장들 / 홍세화

등록 2015-03-26 18:28수정 2015-03-26 22:08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돈 있으면 죄 없고 돈 없으면 죄 있다”는 의미에서 훨씬 확장되어야 한다. 돈 없으면 죄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밀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황에서는 생존 자체가 범법의 경계에 서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왜 우유를 안 사?” 세월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일곱살 딸아이가 순진하게 묻던 모습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그때 우유를 사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샀다. 최근 장발장은행에 참여하여 벌금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만나면서 그 장면이 다시 돌아왔다. 벌금 100만원이나 200만원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 자신에게도 없지만 가족과 친지에게서 빌리기도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직접 만난 기억이 거의 없는데 세상에는 무척 많았다. 세상은 고급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처럼 분리되어 있었고, 나 또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민중”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관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감시와 처벌>을 쓴 미셸 푸코가 동료, 후배들과 감옥감시단을 꾸렸던 일을 소개하면서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했던 화살은 나부터 맞아야 했다.

파리에서 갑자기 외톨이로 남게 된 우리는 어떻게 우유를 살 수 있었을까? 말도 서툰 남의 땅,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내의 생활력이 발휘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게 해준 것은 나의 학벌이 준 인간관계와 프랑스의 복지제도였다. 나는 학교 선배의 소개로 관광 안내 알바를 할 수 있었고, 두달치 아파트 월세를 내지 못해 전전긍긍했었는데 앞서 신청했던 주거수당(소득이 적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월세 중 일부를 국가가 보전해주는 제도) 여러달치를 한꺼번에 받아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와 복지제도, 이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복지체계가 허술한 한국에서 사회관계망도 열악한 사람들은 가난의 질곡 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 벌금을 못 내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구성원들이 매년 4만명에 이른다는 점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무이자 무담보로 벌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이 지난 2월25일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한달 동안 510명의 시민과 단체가 1억원이 넘는 성금을 보내주었고 4차에 걸친 심사를 거쳐 47명에게 8000여만원을 대출해주었다. 언론의 관심도 컸지만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은 대출 신청자들의 쇄도였다. 불똥 튀는 전화는 하루종일 멈추지 않았다. 한정된 재원에 비해 신청자가 워낙 많아 국가로부터 이미 심판받은 사람들을 다시 심판한다는 심리적 곤혹스러움과 함께 신청자들 중에서 일부만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만명 모두에게 벌금을 대출해준다고 가정하면 평균 150만~200만원으로 계산할 때 총 600억~800억원이 필요하다. 장발장은행은 그들 중 기껏해야 2~3%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벌금형 제도의 개선,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9년 한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들어갔던 4만3199명에서 따와 ‘인권연대’가 3년 전부터 벌여온 ‘43,199 캠페인’에 담겨 있는 내용을 보면, 징역형에 있는 집행유예 제도를 벌금형에도 적용하고,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꾸어 소득과 재산에 따라 차등을 두고, 분납제도를 폭넓게 적용하며, 사회봉사제를 활용하는 것 등이다. 가난이 이미 불평등을 겪는 일인데 징벌에서 또 불평등을 겪게 하는 제도는 오래전에 고쳤어야 마땅한데 그러지 않은 것은 왜일까? 몫 없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돈 있으면 죄 없고 돈 없으면 죄 있다”는 의미에서 훨씬 확장되어야 한다. 돈 없으면 죄가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짓도록 밀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황에서는 생존 자체가 범법의 경계에 서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나는 이름을 빌려주면 매달 100만원씩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성인용 비아그라를 전해주면 푼돈이나마 벌 수 있는 지하철 택배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생 고아로 살아온 나는 찜질방에서 눈에 띈 지갑을 슬쩍하여 2만원을 훔치지 않을 수 있을까? 병든 두 아이의 치료비가 많이 들어 밤에 이유식 배달이라도 하여 수입을 늘리고 싶은데 자동차 보험료 낼 돈이 없다고 그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뿐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유전무병, 무전유병’을 결합시켜야 한다.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 중엔 기초생활수급자도 많은데 그 자신이 아프거나 식구들이 아픈 경우가 너무 많다. 병이 들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수영 시인도 개탄했듯이 작은 일에만 주로 분개한다. 작은 도둑들은 빠짐없이 법망에 걸릴 때 큰 도둑들은 법망도 잘 피하는데 우리가 비난하고 냉대하는 쪽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다. 적절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기업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동안 성공불융자금이라는 제도로 3677억원의 융자금을 탕감 또는 감면받았다고 한다. 기업이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투자할 때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실패했을 때 융자금을 탕감 또는 감면해준다. 기업에는 이처럼 국민 세금을 너그럽게 사용하는 국가지만 가난한 국민에겐 야박하기 그지없다.

“선행은 자만과 쌍둥이다.” <주홍글자>로 널리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이 남긴 말로 전해진다. 엄격한 청교도주의를 비판했지만 청교도의 엄격성이라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은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말은 19세기에 속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빈민가 방문’은 ‘취미’에 속했다고 한다. 그 모습은 분명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진 않았다. 프랑스에서 19세기 후반 보통교육이 실시되었을 때 대부르주아의 자식도 청지기(후에 운전기사)나 하인의 자식과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그것은 사회통합의 토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차차 주거 공간과 학교가 분리되기도 했지만 그 비워진 데를 채워준 게 복지제도였다. 19세기에 같은 공간의 만남에서 선행과 온정이 있었다면, 20세기에는 복지제도가 생겼고 그만큼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가 고귀하다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정치의 기본 소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내던지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의 대통령답게 “경제가 불쌍하다”고 말할지언정 정작 이 땅의 ‘장발장’들은 잘 보이지 않는 대통령처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에게도 이 땅의 장발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21세기 한국의 장발장들은 19세기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온정과 선행에서도, 20세기의 복지에서도 먼 존재들인 것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 공동대표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 공동대표
서해성 작가가 기획하고 ‘인권연대’가 활동 중심에 선 장발장은행은 ‘평화인문학’을 통해 교도소 수감자들과 직접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벌금을 대출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상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상환하지 못한들 어떠랴. 은수저를 훔쳐 도망친 장발장에게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까지 건네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영혼을 사겠다.” 그 차원까진 아니더라도 국가로부터는 징벌을, 사회로부터는 무관심과 냉대를 받은 구성원들에게 시민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상환받고 남은 게 아닐까. 성금을 보내준 분들, 앞으로 보내줄 분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 인사 드린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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