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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세계 ‘3대 위기’와 대통령 중동 순방

등록 2015-03-02 19:15

세계는 지금 냉전 해체 이후 가장 큰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국제질서는 미국 일극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독무대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탈냉전 시대의 안보·경제 체제가 결코 굳건한 반석 위에 놓여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균열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로 대표되는 중동 위기, 그리스 좌파 정당 시리자의 집권으로 대변되는 유럽연합의 경제 위기,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촉발된 러시아 위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세계 판도를 흔들고 있는 이른바 3대 위기는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다. ‘거대한 체스판’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의 한쪽 끝 한반도에서도, 국제정세에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여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또 자세히 보면, 그것들이 모두 우리의 운명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러시아 위기는 당장 5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70주년 나치 격퇴 전승기념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가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난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유럽연합의 제재로 서쪽 출구가 꽉 막혀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동쪽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중국·인도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 올해도 일본·남북한·파키스탄·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러시아판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중시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0돌 전승기념일에 시진핑 중국 주석과 박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초청한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이미 시 주석의 참가가 확정됐고 김 제1위원장의 참가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선택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외교·안보의 최대 목표로 내세우는 통일 준비에 대한 협력을 얻자면 러시아의 거듭된 초청을 내치기 어렵지만, 러시아 봉쇄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

부채 상환 문제에 대한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타협으로 유럽 경제위기가 한숨을 돌린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문제를 4개월 미룬 것에 불과하다. ‘정치통합 없는 단일통화 체제’의 모순에서 기인한 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가입국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시정하기 어려운 유로체제의 취약성은 석유값 급락과 러시아 위기와 맞물리면서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경제에 상당 기간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다.

중동 위기는 모든 문제의 압축판이라고 할 만하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동의 패권을 둘러싼 수니파(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이란)의 종파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세계적인 양극화, 석유자원을 둘러싼 강대국 간 이해충돌 등이 그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좌절한 젊은이들이 줄지어 테러에 가담하거나 이슬람국가로 몰려가는 것은 중동 위기가 세계의 위기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나라 김아무개군의 이슬람국가 가담도 결코 한 젊은이의 개인적 일탈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마침 박 대통령이 1일부터 9일까지 쿠웨이트(1~3일)·사우디(3~4일)·아랍에미리트연합(4~6일)·카타르(6~8일) 중동 4개국을 순방한다. 이 중에서도 최근 국왕이 바뀐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는 중동 위기를 좌우하는 핵심국 중 하나다. 국군 통수권자의 ‘외유’ 일정이 2일부터 4월24일까지 열리는 키리졸브(2~13일) 및 독수리(2일~4월24일)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과 겹치는데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는 와중이어서 찜찜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한 자신감의 발로라고 믿고 싶다. 다만, 이번 방문을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지금 중동이 겪고 있는 곤경을 무시한 자기중심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보단 세계 문제가 우리 문제와 어떻게 촘촘히 엮여 있는지를 배우는 수학여행의 기회로 삼는 게 현실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트위터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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