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건설업자로부터 성상납을 받은 ‘스폰서 검사’, 변호사에게 벤츠와 명품 가방을 받은 ‘벤츠 여검사’ 등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면서, 현행 법제도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입법예고안)을 발표했고, 당시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이 문제에 천착해 이 법이 ‘김영란법’으로 불렸다. 법 취지는 공직자가 ‘100만원 초과’ 금품을 수수하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없이도 형사처벌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입법예고안-정부안-국회 정무위안 등을 거치면서 조금씩 바뀌었고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에 올라와 있다. 사립학교와 언론사가 대상 기관에 추가된 건 국회 정무위에서다.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언론사가 추가된 이유는 “<한국방송>(KBS), <교육방송>(EBS)은 포함되는데 왜 똑같은 일을 하는 다른 언론사는 포함되지 않느냐”, “군포문화재단 직원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데, ‘가장 힘있는 기관’(언론)을 뺄 수가 있느냐”는 논지에서 비롯됐다. 속기록만을 보면, 논의 과정이 매우 짧고 다소 즉흥적으로 보인다. 애초 김영란법에서의 ‘공직자’란, ‘공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뜻한 게 아니라, ‘정부 세금을 받는 자 또는 기관’으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기반한 것이다. 나랏돈을 받으니 더한 의무를 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애초 취지에 따르면, 사립학교의 경우도 ‘모든 사립학교’로 할 게 아니라, 정부보조금을 얼마 이상 받는 사립학교로 제한하는 게 맞을 것이다.
‘김영란법’이란 똑같은 행위를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범법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범법이 안 되는 일종의 ‘불평등 법’이다. 그래서 불평등을 적용받는 이는 명확한 기준에 따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애초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었는데, 정무위 논의 이후 언론사 정화법으로 논란이 바뀌었고,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통과도 더 어렵게 됐다. 정무위를 통과하면서 법안 이름에 ‘공직자’라는 단어도 빠졌다.
만일 공적 영향력과 업무의 공공성만을 따진다면 언론사뿐 아니라 시민단체 등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고, 부패의 정도만을 따진다면 대-중소기업 납품비리 관련 기업들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와 언론사가 포함되는 것을 환영한다. 소소한 향응만 따지자면, 공무원보다 언론사 종사자들이 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공직자들과 뭉뚱그려 한 묶음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동하진 못하겠다. 언론사는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며, 언론은 법적으로 일반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는 게 맞다고 본다. 법률 이외의 규제를 하려면, 언론 스스로 하는 것이 맞지, 왜 정부에 이를 의탁해야 하는가? 언론인 부패가 너무 심해 자율규제에 맡기지 못하겠다면, 별도의 언론인 대상 법규정을 만들 것이지, 왜 정부 공무원들과 한 묶음으로 해야 하는가? 혹 언론은 정부가 규제하고 관할해야 한다는 1970년대 시각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왜 정부 보조금을 받지도 않는데 정부 보조금 받는 기관들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가?
그런데 ‘김영란법에 언론사 포함’을 반대하면, “그럼 향응받겠다는 거냐”는 지적에 맘 편하진 않다. 더욱이 진보언론에 있는 경우, 결과적으로 보수언론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는 점은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이럴 땐 가만히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옳지는 않은 것 같다. 언론이 스스로의 신뢰를 갉아먹었기에 이런 논란에 언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언론 편’에 서지 않는 것에 대해 참담한 반성을 하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김영란법에 언론사를 포함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사족이지만, 이 칼럼은 <한겨레> 공식 입장이 아니고, 개인 의견임을 강조한다. 한겨레 구성원들도 김영란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지니고 있고, 이 칼럼은 그 의견들 중 하나임을 밝힌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권태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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